브렉시트 10월말까지 '탄력적 연기'…공은 다시 영국 정치권으로
이전에라도 합의안 통과시키면 브렉시트 앞당길 수 있어
英 정부-노동당 11일 협상재개…하원 통과할 합의점 찾을지 주목
런던 의사당 인근 브렉시트 반대 시위 [EPA=연합뉴스]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의 EU 탈퇴 추가 연기를 승인하면서 당장 오는 12일 '노 딜'(no deal) 브렉시트가 벌어질 가능성은 사라졌다.
'노 딜' 브렉시트란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탈퇴하는 것으로, 영국은 물론 EU 회원국에도 큰 혼란과 타격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영국 정치권의 논의에 따라 브렉시트 여부는 물론 시기 역시 달라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브렉시트 일단 추가 연기…'노 딜'은 피했다
10일 오후 6시 만찬을 겸해 시작된 EU 브렉시트 특별정상회의는 중간 휴식시간을 가진 뒤 자정을 훌쩍 넘긴 11일 오전에서야 마무리됐다.
EU 정상들은 회의 초반 브렉시트 추가 연기의 큰틀에 의견일치를 이뤘지만 얼마만큼 연기할지를 놓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대부분의 EU 회원국 정상은 브렉시트를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 말까지 장기 연기해 영국 정치권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브렉시트 장기 연기는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완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EU는 절충안으로 브렉시트를 10월 말까지 6개월가량 연기하되, 영국이 EU탈퇴협정을 승인하면 바로 브렉시트를 허용하는 '탄력적 연기'(flexible extension) 방안에 합의했다.
앞서 이번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브렉시트를 최장 1년 연기하되, 영국 정치권의 합의 여부에 따라 이를 앞당길 수 있는 '탄력적 연기' 방안을 내놨다.
EU는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허용하면서도 유럽의회 선거 기간인 5월 23∼26일 여전히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면 영국 역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이 이같은 의무를 저버릴 경우 영국은 10월 말이 아닌 6월 1일 '노 딜' 상태로 EU를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EU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메이(왼쪽) 영국 총리와 메르켈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영국은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EU 탈퇴의사를 통보, 지난 3월 29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브렉시트를 단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잇따라 부결되는 등 의회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영국은 지난달 브렉시트 연기를 EU에 요청했다.
EU는 3월 말까지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할 경우 유럽의회 선거 직전인 5월 22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합의안이 부결되면 4월 12일까지 영국이 '노 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거나,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한 뒤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을 또다시 부결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의회의 '의향투표'(indicative vote) 노력도 결실을 맺지 못하자 메이 총리는 지난 5일 브렉시트를 6월 30일까지 추가 연기해줄 것을 EU에 요청했다.
EU는 이날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를 또다시 승인하면서도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우선 브렉시트 합의안 중 EU 탈퇴협정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은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 '이혼조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브렉시트 강경론자 등이 가장 반발하고 있는 '안전장치'(backstop) 역시 탈퇴협정에 들어있다.
'안전장치'는 영국과 EU가 미래관계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을 엄격히 통제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피하고자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종료시한이 없는 데다, 영국 본토와 달리 북아일랜드만 EU의 상품규제를 적용하게 돼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론자와 사실상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계속해서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EU는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수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투스크 의장은 아울러 영국이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EU 탈퇴를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 英 정부-노동당 합의점 찾을까…보수당 강경론자 반발도 변수
일단 브렉시트를 연기하면서 '노 딜'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본질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결국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의회의 승인투표, 나아가 영국과 EU 의회의 비준절차를 넘어서야만 브렉시트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연기법안 투표 결과 기다리는 英 하원 [AFP=연합뉴스]
메이 총리는 그동안 집권 보수당과 DUP에 기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와 DUP가 '안전장치'를 이유로 합의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자 전략을 수정, 제1야당인 노동당에 손을 내밀었다.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와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은 지난주부터 교착상태에 빠진 브렉시트 돌파구 마련을 위한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양측은 브렉시트 합의안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축인 '미래관계 정치선언' 수정에 반영할 수 있는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당은 EU 관세동맹 잔류, 브렉시트 대안에 관한 확정 국민투표(Confirmatory vote) 등을 메이 총리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메이 총리가 관세동맹 잔류, 제2 국민투표 등은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의견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영국이 관세동맹에 잔류할 경우 제3국과 독자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하게 돼 '무늬만 브렉시트'에 그칠 수 있다.
실제 리엄 폭스 국제통상부 장관은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관세동맹 잔류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당 강경론자 대신 노동당에 손을 내밀었지만 관세동맹 잔류나 제2 국민투표에 대한 이견으로 이마저도 실패할 경우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더욱 작아진다.
유럽의회 선거 참여도 변수가 될 수 있다.
EU는 영국이 5월 23일까지 EU 회원국으로 남아있을 경우 반드시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경우 EU에 대한 재정적 분담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아예 브렉시트를 취소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만큼 반대하고 있다.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 수장인 제이컵 리스-모그 의원은 만약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경우 영국이 EU 내부의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혼란을 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의 사퇴 여부도 브렉시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앞서 메이는 EU 탈퇴협정이 승인되면 조기 사퇴하겠다고 보수당 의원들에게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6∼7월 메이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 총리가 취임, EU와의 미래관계 협상을 이끌 것으로 전망돼 왔다.
그러나 EU 탈퇴협정이 여전히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브렉시트가 10월 말까지 연기되면서 메이 총리가 사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당과 손을 잡은 메이 총리의 약화된 리더십으로는 브렉시트 정국 혼란을 제대로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메이 총리를 대신해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등 브렉시트 강경론자가 총리직에 오를 경우 상황을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신임 총리가 EU와의 합의를 깨뜨리고 '노 딜'을 감수한 채 '안전장치'를 포함한 EU 탈퇴협정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EU 정상회의에서 추가 연기를 승인했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과 불확실성은 계속해서 영국과 유럽 정치권에 그늘을 드리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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