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서 1200년전 동굴 벽글씨 확인…국내 첫 사례
울진군 성류굴 정비계획 수립 전 조사하다 발견
화랑이나 승려가 수련장소로 활용했다는 분석
경북 울진군 근남면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굴 내 각석(刻石)’이 발견됐다. 각석은 글자가 새겨진 암벽이나 바위를 말한다.
울진군과 문화재청에 따르면, 울진군 관계자들이 지난달 21일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성류굴(주굴 길이 470m)에 들어갔다가 입구에서 230여m 안쪽에에서 다수의 각석을 발견했다. 다양한 한문자가 종유석(석주·석순)과 암벽에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된 곳이다.
이 한문자들은 종유석과 암벽에 오목새김(음각)돼 있었다. 글자 크기는 다양하고 대부분 해서체(楷書體·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로 쓰였다. 일부 행서(行書·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도 가미돼 있었다.
가장 처음 발견된 각석엔 ‘정원 14년(貞元 十四年)’ 등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있는 문구 여러 개가 새겨져 있었다. 이와 함께 ‘임랑(林郞)’ ‘소(우·牛)’ 등 다수의 화랑 이름들도 발견됐다.
울진군은 첫 발견 이후 문화재청과 세 차례 추가 조사를 진행해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명 등 간지(干支), 통일신라 시대 관직명인 ‘병부사(兵府史)’,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조선 시대 울진현령 ‘이복연(李復淵)’ 등 30여 개의 명문을 확인했다. 특히 ‘신유년(辛酉年)’이나 ‘경진년(庚辰年)’ 같은 연대 문구는 국보 제147호 ‘울산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을사년(乙巳年·서기 525년)’ 문구와 비슷한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시대인 서기 798년에 새긴 ‘정원 14년(원성왕 14년)’ 문구와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 등도 발견되면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그 이후 조선 시대까지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성류굴을 오가며 계속해서 글자들을 새긴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각석들에 정확한 방문 시기와 방문자가 표시돼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이 화랑들이나 승려 등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수련장소로도 활용됐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서기 524년 세워진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나타나는 해서체와 동일한 서체를 보이고, 성류굴에서 발견한 것 중에는 모래시계 모양의 다섯 오(⧖·五)자도 3개나 발견돼 서예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또 고려 말 이곡(李穀·1298~1351)의 『동유기』(東遊記, 1349)에 처음 나오는 ‘장천(長川)’이라는 용어를 그동안은 ‘긴 하천’으로 해석해 왔는데, 이번에 성류굴에서 ‘장천(長川)’ 문구가 발견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화재청은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들은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등 전반적인 학술조사와 함께,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울진=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온라인카지노 커뮤니티 일등!! 온카 https://casinole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