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미숙의 카드였다?"..장자연, 비극의 시작 (2편)
2009년 1월 2일. '호야스포테인먼트'가 보도자료를 뿌렸다.
<이미숙, 10년 만에 소속사 이적…'호야'에서 송선미와 한솥밥>
"배우 이미숙 씨와 前 소속사 '더컨텐츠'의 계약이 만료됐습니다. 이미숙은 2009년 1월 2일부터 '호야'에서 새 출발을 시작합니다." (유장호)
이미숙도 소감을 전했다.
"10년 만에 소속사를 옮겼습니다. 연예계 불황 속에 좋은 회사를 만났습니다. 새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매진해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이미숙)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출발도 하기 전에, 발목을 잡힌 것.
'더컨텐츠'가 반격을 시작했다. 전속 계약 위반을 지적했다. "유장호와 계속 일한다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것이, 전쟁의 발단이다.> 이미숙과 김종승의 싸움. 그리고 장자연은, (애석하게도) 참전 됐다.
'디스패치'가 장자연 사건을 원점에서 살펴봤다. <1편>에서 CCTV를 분석, 사망 일주일 전을 쫓았다. <2편>에서는 사망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 이미숙의 착각
'디스패치'가 입수한 호야스포테인먼트 계약서다. 유장호 대표가 '갑', 이미숙이 '을'이다. 계약 기간은 2009년 1월 1일부터 2010년 12월 30일. 계약금은 1억 원이다.
문제는, 前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 '더컨텐츠' 계약서에 따르면, 이미숙의 전속계약 만료일은 2009년 12월 31일. 즉, 이미숙의 이적은 명백한 계약위반이다.
이미숙의 실수일까, 아니면 고의일까. 어쨌든, 출발부터 NG를 냈다.
◆ 이미숙의 예상
이미숙과 김종승(더컨텐츠 前 대표)은 10년을 동고동락했다. 반대로 말하면, 서로의 치부까지 알고 있는 사이.
'호야' 출신 매니저 A 씨는 '디스패치'에 "이미숙은 김종승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김종승을 압박할 카드를 찾으며 소송을 준비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서 말하는 김종승 스타일은, 법적 대응. 그는 소송의 달인으로 통한다. 게다가 폭로전도 대비해야 했다. 김종승의 입을 막아야 했다.
이미숙의 조카가 유장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2009.01.13)만 봐도 상황이 짐작된다.
"힘내세요. 엄마가 열 받으셔서 '조XX'(건달) 쪽 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김성훈(김종승) 죽여버린다고 말했어요."
◆ 이미숙의 카드 1
이미숙은 1월 중순, 정세호 PD에게 연락했다. SOS를 요청한 것.
다음은, 정세호 감독이 경찰에 제출한 사실 확인서다. 이를 대화체로 재구성했다.
이미숙 : 김종승과 전속계약 위반 문제가 있어요. 감독님이 김종승을 혼내주세요.
정세호 감독은 김종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그는 김종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세호 : 이미숙이 전속계약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더라.
김종승 : 저는 이미 회사를 떠났어요. 지분을 올리브나인에 다 넘겼습니다. 이제 매니지먼트 안 해요. 이미숙 씨가 전속계약대로 이행하면 회사에서 소송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세호 : 네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고?
김종승 : 이미숙 씨가 전에 사귀던 '정○○'에게 협박을 당해 회삿돈 5,000만 원을 쓴 적도 있어요. 회사와 정산도 남아 있어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세호 감독은 다시 이미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세호 : 김종승과 통화를 해보니 (네 이야기와) 좀 다르더라.
이미숙 : 유장호를 보내겠습니다.
◆ 이미숙의 변수
이미숙 입장에선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됐다. 김종승이 과거 연인 정○○ 이야기를 꺼낸 것.
여기서 잠깐, 이미숙은 2005년 LA에서 정○○을 만났다. 1년 정도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2006년 4월, 정○○이 '불륜'을 빌미로 협박을 시도한 것.
김종승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우선, 소속사 돈으로 5,000만 원을 건넸다. 그리고 합의서 1장을 받아뒀다. 다음은, 정○○이 작성한 자술서다.
"본인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중 누나를 알게 됐다. 힘들게 유학 생활 하던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중략) 본인 생활이 힘들어져 누나에게 더 많은 걸 바랐다. 허위 사실을 얘기하며 공갈 협박을 했다."
김종승이 해결한 그 사건, 3년 뒤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 이미숙의 해법
이미숙의 계약 위반은 명백하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3년 이미숙에게 "김종승과 이미숙 사이에 전속계약 해지 합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게다가, 김종승은 이미숙의 약점까지 알고 있다.
만약 소송이 전개되면, 이미숙은 위약금뿐 아니라 (정○○) 합의금 5,000만 원도 지급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이혼 위자료까지 토해야 한다.
이미숙의 해법은 무엇일까. 유장호에게 문자 1통을 보냈다. 2009년 2월 27일이었다.
"저녁에 시간 내라. 저녁 먹자" (이미숙->유장호)
(유장호는 해당 문자를 삭제했다. 위↑는, 경찰이 포렌식 작업으로 복구한 문자 증거.)
◆ 유장호의 하루
2월 27일, 이미숙은 유장호를 만났다. 2월 28일, 유장호는 장자연을 만났다. 장자연은 그날, 문건을 작성했다.
유장호는 바쁘게 움직였다. 3월 1일, 이미숙을 만난 것. 장자연 문건을 들고 일산 MBC 드라마 센터로 갔다. 당시 이미숙은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찍고 있었다.
유장호는 6시 45분 장자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한 씬 남았다." (발신 : 유장호, 수신 : 장자연)
이어, 신사동으로 움직였다. 도착 시각은 8시 29분.
"신사역인데 어디니?" (발신 : 유장호, 수신 : 장자연)
유장호의 3월 1일은 바빴다. 송파에서 일산으로, 일산에서 강남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단, 이미숙과 나눈 대화, 장자연과 나눈 대화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미숙이 그(유장호 미팅) 이후 정세호 감독에게 다시 SOS를 쳤다는 것.
◆ 이미숙의 카드 2
이미숙은 3월 1일과 2일 정세호 감독에게 2~3차례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정세호가 경찰에 보낸 사실 확인서다. 이미숙과의 통화 내용을 제출했다. 이를 대화체로 재구성했다.
이미숙 : 장자연이 저를 찾아와 울면서 부탁을 했어요. 유장호와 A4 지에 글을 작성해왔는데 (장자연이) 감독님과 태국에서 골프 쳤다는 내용도 있어요.
정세호 : 너는 나랑 태국에 골프 치러 안 갔냐? 정○○과도 같이 안 갔냐? 내가 10년 동안 태국에 다니는데 알아서 온다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못 오게 하냐?
이미숙 : (장자연이 쓴) 내용이 기가 막혀요. 김종승은 감독님만 무서워해요. 감독님 말만 들으니까. 장자연이 쓴 글 읽어보시고 김종승 야단 쳐주세요.
이미숙은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미숙 : 유장호가 장자연을 데리고 감독님 찾아 갈 거예요. A4용지도 들고요. 만나서 이야기 들어봐 주세요.
정세호 : 알았어.
유장호도 정세호 감독에게 전화했다.
유장호 : 장자연 데리고 찾아가겠습니다. 문서도 있습니다.
정세호 : '내 인생의 황금기' 마지막 촬영을 마쳐야 하고. 그 주말에는 종영 기념 파티도 있으니까. 3월 9일 월요일 오후쯤 만나자.
◆ 장자연의 죽음
2009년 3월 7일 오후 3시 34분, 유장호가 장자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월요일(9일)에 나랑 누구 만날 거 같아. 오후에 스케줄 비워줘. 월요일 오전에 전화해"
장자연은 이 문자를 받고 2시간 뒤에 목숨을 끊는다.
경찰은 장자연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했다. 그와 연결된 인물들을 차례로 조사했다.
경찰은 2009년 4월 2일, '수사보고서'를 올렸다. <이미숙 자살원조 또는 자살방조 혐의 관련성>에 대한 보고서다.
"본 사건의 발단은 이미숙이 일본에 도피 중인 김종승의 기획사인 더컨텐츠와 계약 만료 전에 송선미, 유장호(당시 매니저)와 공동으로 나와 '호야'라는 기획사를 차리게 되었고, 이에 감정을 가진 김종승은 이미숙의 치부를 건드리게 됨.
이미숙은 김종승을 연예계에서 추방하고 계속 이미숙의 약점을 잡고 협박해 올 김종승에 대비하기 위해 김종승 회사의 소속 연예인이었던 장자연 등 다수에게 김종승에게 당한 피해사실을 기록한 문건을 유장호에게 지시하여 작성하게 하였음."
◆ 이미숙은 모른다?
다음은, 이미숙의 경찰 조사 대응 방식이다.
경찰 : 장자연을 알고 있나요?
이미숙 : 과거에는 몰랐고 이번 사건을 통해 이름만 들었습니다.
경찰 : 장자연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미숙 : 모르겠습니다.
경찰 : 장자연이 유장호와 함께 문건을 작성했다는데 알고 있나요?
이미숙 : 모릅니다.
경찰 : 유장호로부터 문건을 건네받은 사실이 있나요?
이미숙 : 없습니다.
경찰 : 문건의 내용을 본 사실이 있나요.
이미숙 : 본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송선미와의 관계도 부인했다.
경찰 : 송선미를 알죠?
이미숙 :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같은 소속사 연예인으로서 알죠.
경찰 : 이미숙, 또는 송선미, 그 이외에 사람이 '호야'에 지분투자나 운영 관계한 사실 있나요?
이미숙 : 아니요, 없습니다.
경찰 : 주변인 말에 의하면 이미숙이 실제 운영자라 하던데 사실 아닌가요?
이미숙 : 저는 그럴 능력도 없고 누굴 시켜 운영하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 하지만 그들은 안다.
경찰은 이미숙(송선미 및 유장호 등)에게 죄를 묻지 못했다. 혐의 입증에 실패한 것.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장자연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났다. 어느 것도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장자연이 가장 믿었던 언니, 이 씨의 진술서를 다시 보자.
경찰 : 유장호가 장자연에게 보여줬다는 다른 배우들의 문건에 대해 물어보았나요?
이 씨 : 이미숙, 송선미, 다른 신인(윤지오) 등이 적은 문건이 이 만큼(제 손바닥 크기 정도) 있었고, 장자연이 그 문건을 보고 적었다고 했습니다.
장자연 재조사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장자연에 대해, 술접대에 대해, 김종승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부터. 그렇게, 장자연을 이용한 세력들을 찾아야 한다.
장자연 리스트는, 장자연 혼자 작성한 게 아니다.
글=김지호·박혜진·구민지기자(Disp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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