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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양’ 르노삼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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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노조, 왜 강경해졌나

노동생산성 4배 늘 동안 노동강도는 2배 세져… 600여명은 기본급이 최저임금 미달



3년째 이어진 르노삼성 노사의 무분규 임금협상이 깨졌다. 지난해 10월 임단협 타결에 실패한 르노삼성자동차노동조합(르노삼성노조)가 부분파업을 시작하면서다. 부분파업은 이제껏 160시간(3월 7일 기준) 동안 이뤄졌다. 르노삼성노조는 동종업계 노조 가운데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분류됐다. 노조는 2012·2013년 임금동결에 이어 2015년 호봉제 폐지와 임금피크제 도입, 관리자 활동유지비 폐지까지 사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재계에서는 르노삼성노조를 모범적이라고 치켜세웠다.

‘순한 양’이었던 노조가 부분파업을 비롯한 투쟁을 택하자 여론은 돌변했다. 사측을 비롯해 협력업체, 재계와 보수·경제매체가 일제히 노조를 비판하고 나섰다. 신차 배정을 앞둔 시기에 돈을 더 달라며 벌인 파업이 르노삼성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여기에 지난 2월 1일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이 “파업을 멈추지 않으면 후속 물량을 배정하기 어렵다”고 공개 경고한 뒤 비판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강성노조 집행부를 택했고, 노조 역시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이들이 투쟁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르노삼성 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 제공

노조 요구의 핵심은 근무환경 개선 



2017년 르노삼성은 401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3년 흑자전환으로 돌아선 뒤 지금껏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2011년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르노삼성은 2012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2년 1000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했고 지금까지 1600명이 회사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효과는 있었다. 무엇보다 노동생산성이 개선됐다. 르노삼성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12년 5800만원에서 2016년에는 2억2000만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실적이 개선되는 동안 현장 노동자들의 작업량은 2배가량 늘었다. 5700명이 하던 작업을 4100명의 노동자가 분담하게 된 탓에 노동강도가 세진 것이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는 66대(의장공장 기준)다. 노동자들이 1분에 1.1대씩 차량을 생산하는 꼴이다. 1개 라인에서 7개 차종을 만드는 혼류생산도 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 지표를 나타내는 하버 리포트 평가에서 2016년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전세계 148개 공장 가운데 종합 8위에 올랐다. 노조는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17명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11명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이번 임단협에서 인력 채용과 노동강도 완화를 주장하는 이유다.

르노삼성의 배당 구조에 대한 정상화도 노사교섭 쟁점이다. 르노삼성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6180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2000년 삼성차 인수 당시 인수금액은 6150억원. 인수금보다 많은 금액을 배당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노조는 르노의 과도한 배당뿐 아니라 내부거래를 통해 부산공장의 이윤을 빼가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값비싼 르노·닛산 부품 비중을 늘리고 기술사용료 명목으로 거액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국세청은 르노삼성에 대해 700억원 상당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국세청의 추징금 결정은 부품값을 비싸게 치르고 수입하는 한편 과도한 기술사용료를 받아간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기준으로 따져보면, 같은 외국기업인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기술사용료는 각각 51억원과 928억원으로 무려 18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약탈적 자본주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외국회사는 자본 회수가 목적”이라며 “르노는 투자금 회수가 끝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성 지표가 향상되고 르노가 배당금을 챙기는 동안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노동자들의 처우다. 르노삼성노조가 원하는 임금요구안은 기본급 10만667원 인상이다. 최저임금을 위반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인상분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현재 조합원 2301명 가운데 600여명이 최저임금에 밑도는 기본급을 받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인상 불가 방침으로 맞서고 있다. 기본급 동결에 따른 기본급 유지 보상금 100만원을 비롯한 생산성 격려금, 성과격려금 등을 지급할 의향은 있지만 기본급 인상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각종 수당과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 인상은 사측으로선 최대한 피하고 싶은 제안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르노는 전사 차원에서 인건비 절감에 굉장히 애를 써온 회사”라며 “최근에 CEO가 바뀌었는데 실적이 필요한 새 CEO로서는 더욱 원가를 아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사임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 얼라이언스 회장이 선호한 경영방식은 ‘위기감 조성’이었다. 예컨대 노동자에게 수시로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자서전 <르네상스>에서 “긴장감은 곤식 경영 스타일의 필수조건이다. 위기에 빠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밝힌 바 있다.

르노삼성은 그동안 곤 전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충실히 따랐다. 곤 전 회장이 내건 이른바 ‘리바이벌 플랜(회생계획)’에 따라 경비를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며 지속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르노삼성 노동자들은 회사의 경영상황이 나아지면 근무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근무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중형 SUV ‘QM6’가 공정을 거치고 있다. 경향DB

회사 살렸지만 처우는 제자리



노조가 파업에 나서자 당장 비난이 쏟아졌다. 르노삼성의 전체 생산차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닛산 SUV 로그의 계약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파업을 벌인 탓에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과 별개로 닛산 로그 재계약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2013년에는 동일본 지진 등으로 일본 공장 경쟁력이 떨어진 탓에 로그 물량을 받았지만 지금은 일본도 물량 배정이 간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본사의 위탁생산 주문에 의존하고 있는 르노삼성 특성상 후속 물량 배정을 받지 못하면 공장 가동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르노삼성 협력업체도 타격을 받는다. 최근에는 르노삼성자동차수탁기업협의회를 비롯한 협력업체와 지역 경제단체가 노조 측에 조속한 노사합의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노조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근무환경 변화에 대한 파업을 할 권리가 있다”며 “이들이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비정규직을 비롯한 다른 노동자들도 자유롭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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