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마스크'의 배신…"9만원 주고 샀는데 무허가라니"
미세먼지 공습에 디자인·패션 앞세운 고가 마스크 '불티'
상당수 KF인증 없는 '무허가 마스크'…식약처 "단속대상"©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한재준 기자 = "9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무허가 마스크라니…."
직장인 김모씨(29·여)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큰맘 먹고 산 고가의 '프리미엄 마스크'가 알고 보니 '무허가 마스크'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주 온라인 쇼핑몰에서 뉴질랜드 브랜드 A사의 '프리미엄 필터 마스크'를 구입했다. 9만원에 가까운 고가였지만, 미세먼지는 물론 세균까지 막아주고 디자인까지 좋아 고민 끝에 선택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하지만 김씨가 산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보건용 마스크' 성능 인증기준인 'KF(Korea Filter)'를 받지 않은 무허가 마스크였다. 김씨는 "내일부터 다른 마스크를 써야 할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해당 마스크 광고 내용을 검토한 식약처는 관할 보건소를 통해 업체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시중에서 8만4000원대에 판매되는 뉴질랜드의 한 프리미엄 필터 마스크. KF인증 없이 미세먼지입자 차단효과를 광고하는 행위는 식약처 단속대상이다.(온라인 쇼핑몰 갈무리)© 뉴스1
◇8만원대 고가 '프리미엄 마스크'?… 뜯어보니 '무허가'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연일 전국을 뒤덮으면서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지만 이를 틈탄 '무허가 마스크'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스크도 패션'이라는 인식과 함께 디자인과 기능을 강조하는 고가의 '프리미엄 마스크'가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가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으로 확인됐다.
7일 <뉴스1>이 시중에서 4~8만원대에 판매되는 고가의 '필터 마스크' 5종을 무작위로 선정해 식약처에 의뢰한 결과 이 중 3종이 KF인증을 받지 않은 '무허가 의약외품 마스크'라는 판단을 받았다.
KF는 식약처가 제품의 미세입자 차단 성능을 검증한 뒤 부여하는 '인증마크'다. 'KF80'은 평균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걸러낼 수 있고, 'KF94'와 'KF99'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낸다는 의미다.
KF인증을 받은 마스크만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있는 '의약외품 보건용 마스크'로 인정된다. 현행 약사법은 KF인증을 받지 않고 '미세먼지 차단 효과'를 홍보·판매하거나 제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식약처도 사이버조사단을 꾸리고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뉴스1> 취재 결과 상당수의 업체가 KF 허가를 받지 않은 해외 마스크를 국내로 들여와 유통하면서 외국기관의 인증서를 내세우거나 '미세먼지' 단어만 빼고 홍보하는 '꼼수'로 법망을 비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구입한 A사의 '프리미엄 필터 패션 마스크'는 Δ뉴질랜드 원산지 Δ미세먼지입자 98% 차단 Δ공기 중 유해세균 99.99% 차단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시가 8만4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업체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제작에 참여해 외관이 훌륭하고, 영국·미국 연구기관에서 초미세먼지(PM2.5) 차단 효과를 인증받았다고 홍보했다.
식약처 단속에 적발된 무허가 마스크 중에는 대중에 잘 알려진 중국 B사 제품도 있었다. 시중에서 약 5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B사의 마스크 광고에는 "자체 필터를 사용해 오염물질을 99.98%까지 차단해준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식약처는 두 마스크 모두 '무허가 마스크'로 판단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KF 허가 없이 여과율이나 미세먼지 차단 효과를 광고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법률을 검토해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8만9900원에 판매 중인 중국의 한 '프리미엄 필터 마스크' 광고. 판매 업체는 '중국 KN95인증을 받아 0.3㎛ 오염물질을 98% 여과한다'고 광고했지만, 식약처 조사 결과 '무허가 마스크'로 드러났다.(온라인 쇼핑몰 갈무리)© 뉴스1
◇해외 인증 들이밀고 '꼼수'까지…"KF인증 확인해야"
KF인증과 무관한 '테스트 성적표'를 들이밀거나, '미세먼지' 표현만 빼고 오염물질 차단 효과를 홍보해 법망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꼼수'도 있었다.
9만원에 가까운 가격 때문에 '최고급 미세먼지 마스크'로 불리는 중국 C사의 필터 마스크는 '0.3㎛의 오염물질 98% 여과 효율'이라는 문구와 함께 '식약처에서 인증한 기관에서 분진 등 포집효율이 98% 이상임을 증명했다'고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C사가 테스트를 받았다는 '식약처가 인증한 기관'의 출처가 모호했다. C사가 통과했다는 '보건용 마스크 인증시험'도 KF 허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C사가 공개한 인증서는 중국에서 받은 'KN95'이 전부다.
식약처 관계자는 "C사가 통과했다는 테스트는 KF인증과 아무런 관련도, 효과도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중국 KN인증도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허가 마스크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속망에 걸리진 않았지만 불법의 여지가 있는 '꼼수 광고'도 눈에 띄었다. 여성전용 필터 마스크를 판매하는 D업체는 해당 마스크에 대해 '영국왕립표준협회(BIS)에서 N95등급을 받았다'라고 설명하면서 'N95는 KF94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광고했다.
D업체 관계자는 "아직 KF인증을 받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광고에 '미세먼지' 대신 '미세오염물질'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D사는 식약처 모니터링에 단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허가 마스크로 봐야 한다'는 식약처 입장은 변함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BSI인증은 국내에서 인정되지 않는 기준"이라며 "미세먼지 대신 미세오염물질이라는 단어를 쓰면 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해당 업체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해외에서 인증받은 마스크라도 KF 허가를 받지 않고 '미세먼지 효과'를 홍보하거나 판매하면 단속대상이 될 수 있다"며 "미세먼지 마스크를 살 때 KF인증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식약처가 발표한 'KF 허가 제품 명단' 543종 중에서 4개 업체의 마스크는 모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