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강우 뿌린다는데…전문가 "비과학적 보여주기"
서울 온 외국인도 `컥컥`고농도 미세먼지가 이어진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고쳐 쓰고 있다. 이날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한때 158㎛/㎥를 기록했다.
[이승환 기자]최악의 미세먼지가 1주일 동안 계속되면서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고 나섰지만 전문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대통령의 지시가 오히려 실무진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미세먼지 대책 주문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앞서 1월 22일에는 최악의 미세먼지가 지나간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공강우, 고압분사, 물청소, 공기정화필터, 또는 집진기 설치 등 새로운 방안도 연구개발하고 시행해서 경험을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법을 거론하며 대책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한중 동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와 중국과의 기술협력을 기반으로 한 '인공강우 공동 실시'를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주문에 대해 "'답답함을 드러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미세먼지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지적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먼저 인공강우는 본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인공강우는 구름을 이루는 작은 수증기 입자들이 서로 잘 뭉쳐 물방울로 떨어지도록 구름씨(응결핵)를 뿌려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인데, 미세먼지를 가라앉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첫째,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나타나는 경우는 한반도가 고기압 영향권에 들어 있을 때인데, 이런 조건에서는 인공강우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입자 크기가 2.5㎛(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하인 초미세먼지(PM2.5)는 비로도 잘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우정헌 건국대 기술융합공학과 교수는 "인체 깊숙이 침투해 실질적으로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PM2.5는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대부분 비로 씻어 내릴 수 없다"고 꼬집었다.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일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비가 온 뒤 잠깐 깨끗해질 순 있어도 곧 미세먼지는 다시 생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초미세먼지는 수분이 많은 환경에서 더 잘 생성된다.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인공강우로 구름의 수분을 인위적으로 다 써버리면 다른 지역에는 가뭄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요오드화은이 섞인 비가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환경 관련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 나서서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는 건 '권위주의 시대의 악습'"이라고 비판했다. 김세웅 교수는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공강우 효과에 대해 이미 회의적인 결론을 내렸다"며 "마치 인공강우가 미세먼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밖에 대통령이 언급한 다른 조치들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기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미세먼지를 가라앉히는 방식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압살수 조치가 습도를 높여 오히려 초미세먼지의 생성을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덕환 교수는 "물을 뿌려서 안개를 걷히게 하겠다는 발상과 똑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비상저감조치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비상저감조치가 취해질 경우 미세먼지 발생량을 4~5%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과 우리가 동시에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해도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발생한 상황에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상황에서는 배출량을 찔끔 줄여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 간 회담을 통해서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실무선으로 떠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난색을 표하고 있는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최고위급 외교 활동으로도 부족한 판에 실무부처에 "중국과 협의하라"고 뒤늦게 지시하는 것은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발 미세먼지에 넌덜머리가 난 국민들 사이에서 "중국에 제대로 항의 좀 하라"는 여론이 들끓는 것에 대한 보여주기식 대응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에서도 미세먼지를 의제로 한 한중 정상회담을 대통령에 요구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미세먼지를 주요 의제로 하는 한중 정상회담을 열어 할 말은 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기를 촉구한다"고 밝혔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6일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중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조는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에 있었던 한중 환경장관회담에서도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중국도 미세먼지가 심각해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실제 유의미한 합의는 중국 내 31개 시의 실시간 미세먼지 상황을 공유받기로 한 것과 중국 내 미세먼지 배출의 저감을 위한 기술적 협력을 함께한다는 내용뿐이었다. 한 전문가는 "국제적으로도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책임을 진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가 아무리 압박을 한다 해도 중국의 대승적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