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가입 후 ‘성매매 여성 공급지’ 된 루마니아…무슨 일이
‘루마니아’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전설의 체조 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란 찬사를 받으며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 체조 역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득점한 선수죠.
혹은 공산권 최악의 독재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요. 또는 이 나라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조차 생소한 분도 있을 테고요.
2010년 1월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루마니아가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빠르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밀어낸 분야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 일하는 이주 성매매 여성 숫자(migrant sex workers in EU)’ 다시 말해 ‘성매매 수출국’ 순위에섭니다. 인구 2000만의 작은 동유럽 국가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번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선 루마니아의 EU 가입에 따른 그림자라 할 성매매 산업의 비극에 대해 들여다보겠습니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성매매를 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 다른 EU 국가로 이주하는 원정 성매매 여성의 약 70%는 동유럽 출신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top countryof origin)을 차지하는 것이 루마니아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독일과 영국, 네덜란드 등 성매매가 합법인 서유럽 국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특히 독일에선, 지난 20년간 합법화 정책의 영향과 이주 여성의 유입으로 성 산업 종사자 숫자가 두 배 증가해 4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의 국경을 넘는 이동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EU 역할이 컸습니다. EU 협약에 따라 각 회원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문이 넓어지고 이주의 자유가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루마니아일까요.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는 빈곤과 밀접하게 연결돼있습니다. 루마니아는 불가리아에 이어 EU 가입국 중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루마니아의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 813달러(약 1214만원)로 독일·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와 3~4배 차이가 납니다. 근로자의 한 달 최저 임금은 2018년 기준 409 유로(약 52만원)에 불과하죠.
반면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 홍등가의 화대는 ‘서비스’ 시간에 따라 회당 50~200 유로(약 6만~25만원)입니다. 루마니아 출신 성매매 여성이 서유럽에서 하룻밤에 월급을 버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단지 쉽게 돈을 벌고 싶어 업계에 뛰어든 것일까요?
물론 경제적 이유로 성매매를 선택한 여성들도 있을 겁니다. 루마니아의 니트족(20~34세 청년 중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 비율은 약 21%로 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고, 농업 인구 비율은 25%로 EU 1위죠. 자국엔 취업 기회가 없는 반면, 이웃 나라에선 성매매로 하룻밤에 월급을 손에 쥘 수 있어 자발적으로 후자를 택하는 여성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면엔 좀 더 복잡한 사정도 있습니다. 바로 인신매매인데요. 미 국무부의 국제 인신매매 보고서에 따르면 “성매매가 합법화된 지역에서는 거의 항상(nearly always)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인신매매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성매매 합법화 정책이 매수 수요를 늘리고, 늘어난 수요에 대응해 여성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인신매매가 발생한다는 것인데요. EU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EU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자유주의적인 성매매 정책을 채택한 독일(기업형 성매매 업소·성매매 광고 및 알선이 모두 합법)의 사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연구에 따르면 2001년 1만 9740명이었던 독일 인신매매 피해자(내·외국인 포함)수는 성매매 전면 합법화가 시행된 2002년 2만 2160명, 2003년에는 2만4700명으로 늘었습니다. 그중 내국인 피해자는 10%에 불과했죠.
또 EU 집행위원회는 서유럽으로 팔려나간 동유럽 인신매매 피해 여성의 수가 1998년 이후 약 10년간 두배로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독일에서 성매매가 전면 합법화된 2002년은, EU 최빈국인 불가리아 여성 피해자들의 독일행 인신매매가 크게 증가한(substantial increase) 시기와 일치합니다.
서유럽의 성매매 합법화 정책이 동유럽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로 이어졌음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유럽 여성 중에서도 동유럽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신매매를 연구해 온 실비아 타부스카 루마니아아메리칸 대학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를 짐작게 하는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타부스카 교수에 따르면 루마니아 생산가능인구의 20%는 해외 노동자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약 12만명의 루마니아 어린이가 부모 중 최소 한쪽이 해외 노동자로 일하는 상태라는 것이죠. 그는 “부모의 돌봄 없이 성장한 아이들은 만성적인 애정 결핍 상태에 놓여있고, 심리적 조종에 특히 취약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레프 등에 따르면, 동유럽의 소녀들은 약 14살 때부터 포주들에게 노출됩니다. 이들은 수년간 아이들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며 남자친구(loverboy) 행세를 한다고 하는데요.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아들을 길들인 뒤, 온갖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 이들을 홍등가에서 일하게 하고 화대를 상납받는다는 겁니다.
타부스카 교수는 이 과정에서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이 가해지며, 마약에 중독되도록 유도하거나, 포주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포장한 뒤, 이를 불쌍하게 여긴 여성들이 돈을 가져다 바치게 하는 수법(self-victimizing tactic) 등이 쓰인다”고 말했습니다.
취약한 교육 시스템도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타부스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높은 빈곤율과 부모의 부재 때문에 루마니아 청소년 중 19%가 학업을 조기에 중단합니다. 이들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점수는 EU 최하위권이고, 청소년 중 기능성 비문해자(functional illiterate·문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생활에 필요한 서류를 읽고 작성하는 등 실질적 독해·작문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의 비율은 42%에 달합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정신적으로 길들여지거나 세뇌당한 여성들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화대를 뺏기면서도 경찰에 신고하길 꺼린다고 합니다. 상습적인 폭력을 겪은 아내가 무기력감을 느끼며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를 상실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죠.
그렇다면 동유럽 여성들이 유입된 서유럽의 성매매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악셀 드레허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경제학 교수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성매매 합법화는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확실히(certainly) 실패했다”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착취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들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이 성매매 합법화를 결정한 것은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이들에게 세금을 걷고,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하며, 음성적이고 착취적인 성매매 관행을 없애겠단 의도였죠.
하지만 취지와 달리, 합법화는 시장 확대를, 시장 확대는 경쟁을, 경쟁은 극단적인 노동 환경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드레허 교수의 주장입니다.
일례로 독일에서는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만삭의 임신부에게 돈을 주고 성매매를 맺는 일이 합법이었습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현상을 “임신부에게 보다 높은 화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남성들이 모여 일종의 ‘틈새시장’을 형성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매년 국제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를 발행합니다. 이 보고서에서 인신매매를 없애기 위한 루마니아 정부의 노력은 지난 8년간 매해 2등급(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기준치를 모두 달성하진 못했으나,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상태)으로 평가됐는데요. 이유는 “기소율을 높이는 등 법적 처벌을 위해 노력했지만, 사후 지원이 미흡해 피해자들이 또다시 인신매매의 위험과 트라우마에 노출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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