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경고도 안 통하자 정부 ‘초강수’…보육대란 초기 진화 뜻
무관용 대응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가운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3일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잡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집단폐원 예고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오른쪽)이 3일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탄압을 멈추지 않으면 폐원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정부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지난 1일 기습적인 집단 개학연기를 선언하자 휴일인 2일 긴급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고 엄중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선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당국까지 총출동해 한유총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한유총이 3일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답변은 “개학연기는 물론 폐원투쟁까지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에 정부는 즉각 한유총의 사단법인 허가 취소, 형사고발 등 초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조기에 사태를 수습해 ‘보육대란’이 일어나는 일을 막겠다는 뜻이다.
■ “한유총과 협상 없을 것”
한유총 시행령 저지 속내에
정부 “대화는 없다” 못 박아
한사협과 정책 협의도 시사
한동안 잠잠했던 한유총이 정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에 가시적인 반발 움직임을 다시 내비친 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유아교육 사망선고! 교육부 시행령 반대 총궐기대회’부터다. 25일은 교육부가 사립유치원의 에듀파인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공포한 날이다. 이후 사흘 만에 개학연기에 나서기까지 한유총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게 바로 정부와의 ‘협상’이다. 한 사립유치원 관계자는 “궐기대회든 개학연기든 일단은 시행령부터 막자는 게 본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더 이상 한유총과 대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등 수도권 교육감들은 이날 공동회견을 갖고 한유총에 대한 법인 허가 취소와 함께 “한유총이 현재와 같이 교육단체로서의 책무성을 망각하는 일을 지속하는 한 어떤 협상도, 협조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 3월 기준 전국 3875개 사립유치원 중 절반에 달하는 1864개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조 교육감 등은 “사립유치원의 공공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사립유치원단체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정책협의를 진행하겠다”고도 밝혔다. 한유총 대신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한 ‘파트너’로 에듀파인 도입 등에 찬성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 등을 택하겠다고 공식화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한유총은 법인 취소로 인해 교육단체 지위 상실은 물론 정부와의 협상 창구마저 완전히 잃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비리 유치원’ 대거 참여
비리 유치원 ‘휴원’ 대거 참여
수사 당국 ‘줄소환’ 가능성도
수도권 교육감들은 4일 전수조사를 통해 실제 개학연기에 나선 유치원을 파악한 뒤 하루 동안 시정명령 기간을 부여, 명령 이행을 거부하면 5일 곧바로 수사기관에 해당 유치원을 고발할 계획이다. 유아교육법이나 관련 시행령 등에는 유치원이 시정명령을 이행할 구체적인 ‘기간’을 명시하고 있진 않다. 단 하루만 지켜보고 고발에 나서겠다는 배경에도 정부의 초강경 대응 기조가 있다.
이 가운데 개학연기를 선언한 유치원들 상당수가 지난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비리 유치원’ 명단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검경의 수사 방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이날 낮 12시 기준 발표한 ‘개학연기 및 무응답 유치원 486곳’에 대해 참여연대가 자체 분석한 결과 75곳이 비리 유치원 명단에 속한 유치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경이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고발 사항에 대해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고발이 이뤄지면 해당 유치원 이사장이나 원장 등에 대해 수사당국이 줄소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유총은 개학연기를 하면서도 “에듀파인 도입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새 유아교육법 시행령이 적용되면서 에듀파인 거부 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개학연기에 참여하는 유치원들 중 올해부터 당장 에듀파인 적용을 받는 ‘재원 200명 이상 유치원’이 많은 점을 들어 사실상의 에듀파인 거부로도 이번 사태를 해석하고 있다. 참여연대 분석 결과 충남의 경우 에듀파인 적용 대상 27곳의 유치원 중 21곳이 개학연기를 선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유총이 “개학연기는 합법적”이라며 맞서고 있어 법적 공방도 예상된다. 한유총은 “정부는 개학연기가 유치원 운영위원회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이라 단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내부 법률검토 결과 사립유치원 운영위는 자문기구일 뿐 개학 여부는 운영자 재량 사항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 비상대응체제 총동원
교육부는 관계부처 및 시·도교육청 등과 협의해 한유총의 개학연기 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한유총과의 ‘전면전’을 앞둔 만큼 보육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시간으로 변동되는 개학연기 유치원 현황과 대응 방안은 각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개학연기를 확정한 유치원과 해당 지역에선 교육청별 유치원, 유아교육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긴급돌봄 운영체계를 마련해 이날 오전 9시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육부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4일부터 즉시 공립유치원, 아이돌봄서비스, 어린이집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를 완료했다”며 “유치원 방과후과정 교사, 초등 돌봄전담사, 기간제 교사 임시 지원 등 돌봄 인력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교육청 및 지자체에는 긴급돌봄 상담 대비 인력이 상주하며 학부모 민원에 응하도록 했다.
4일부터는 불법 기습 개학연기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사립유치원에 오전 7시부터 행정인력이 배치된다. 유치원이 별도 통지 없이 개학을 연기할 경우 교육지원청과 주민센터 및 파출소 직원이 학부모에게 사항을 안내하고, 긴급돌봄이 필요한 유아는 지원 기관으로 이송할 계획이다.
지자체별로도 총력대응에 나서 경기도의 경우 전국 최다인 39개 유치원이 개학을 연기하는 용인시를 ‘긴급돌봄 최대위기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24시간 비상대응 운영, 자원봉사자 배치 등 대책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