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스무살때까진 못 죽어"···'사기병' 엄마가 그린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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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07:24
"내 몸에는 두 군데 상처가 있다. 나는 위암 말기 환자다."
2019년 2월 9일. 대사 두 마디의 짧은 만화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희끄무레한 연필 자국 위로 그어진 삐뚤빼뚤한 선, 그 안을 채운 봄날 같은 색감. 투병 인스타툰 '사기병(@sagibyung)'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기병'의 현재 팔로워는 약 13만명.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카툰 에세이로도 출간됐다.
'사기병'을 연재 중인 16년차 그림책 작가 윤지회(41)씨가 지난달 24일 카카오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판매수익의 일부가 백혈병 환아에게 기부되는 '기브티콘'이다. 지난 8일 윤씨를 전화 인터뷰했다. "항암약 부작용으로 며칠 전에 또 수술했다"면서도 밝고 기운찬 목소리였다.
Q : 어떤 병인가.
A : 2018년 2월에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어요. 2년간 쉬지 않고 항암 치료를 했습니다. 지난해 9월엔 암세포가 난소에 전이돼 적출 수술을 했어요. '사기병'은 5년 생존율이 7%인, 사기(沙器)병 안에 갇힌 듯 답답한, 내 인생에 사기(詐欺) 같은 병, 위암 4기라는 뜻이에요.
Q : 항암 치료를 받고 있겠다.
A :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 첫 8개월은 펜을 잡지도, 앉지도 못했습니다. 항암약은 정상 세포도 죽이는 독한 약이에요. 저 같은 말기 암 환자들은 죽을 때까지 항암 치료를 받아요. 2주 간격으로 항암을 하면, 일주일은 실신했어요. 계속 토하고, 공황장애로 숨도 쉴 수 없었죠. 살아있는 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요.
Q : 작품활동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 원래 그림 그리던 사람은 그림을 그려야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투병하면서 모든 작업이 중단됐는데, 정말 우울하더라고요. 특히 한 달만 더 작업하면 완성될 예정이던 동화책(『우주로 간 김땅콩』)은 어떻게든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보통 한 장 완성하는 데 며칠이면 되는데, 두 달에 한 장씩 그리면서 힘들게 완성했어요.
Q : 그렇게 힘든데 어떻게 참았나.
A : 제 아들한테 꼭 책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처음엔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경기도 양평의 마당 있는 주택으로 이사 왔어요. 계속 요양병원에서 지내기엔 5살 된 우리 아들이 너무 눈에 밟혀서요.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Q : 카카오 기브티콘에 참여한 계기는.
A : 1년 가까이 '사기병'을 그리면서 이모티콘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림책 작가 모임에서 사주신 아이패드로 세 달동안 이모티콘 24종을 만들고, 수능 앞둔 수험생 같은 심정으로 응모했어요. 어느 날 카카오에서 '기브티콘'으로 출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어요. 적은 돈이지만 제 수익으로 백혈병에 걸린 어린 친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뻤어요.
Q : 기브티콘 이후 삶은 어떤가.
A : 체력이 된다면 앞으로도 모든 창작 활동을 기부와 연결하고 싶어요. 저도 무너질 때마다 '사기병' 독자들 덕에 일어섰으니까요. 좋은 음식을 보내주시는 분, 직접 만든 예쁜 베개나 모자를 주시는 분…. 그분들처럼 저도 누군가를 돕고 싶어요.
Q : 이모티콘 '엄마와 반지'에 담긴 의미가 있나.
A : 아들 건오의 태명이 반지에요. 건오와 제 일상을 담았어요. 이모티콘을 보면 계속 건오를 보는 기분이에요(웃음).
Q :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분들께 한 마디.
A :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린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나이가 비슷한 젊은 엄마들이 너무 많이 죽어요. (목이 메며) 같이 투병하던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충격이 굉장히 커요. 얼마 전에도 친구를 보냈어요. 어린 자식을 두고 가는 친구, 일찍 부모를 떠나는 친구를 보면 하늘이 원망스러워요. '좋은 약이 개발될 때까지 잘 버티자'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Q :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 아들 건오에게 매일 밤 자기 전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해요. 한창 사랑받을 나이인데 엄마가 수시로 병원에 있으니 늘 미안하죠. 사랑하고 미안하다, 그 말을 하고 싶어요.
그에게 '사기병' 만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물어봤다. 항암 부작용으로 물조차 마실 수 없어 매일이 두렵고, 마음이 땅으로 꺼지는 듯할 때, 1분 1초를 소중히 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절망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죽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까짓거 살아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지. 정신 차리고 물이라도 넘기자. 건오 스무살 될 때까지."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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