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98명… 세계 저출산 기록 다시 쓰는 한국
27일 서울시내 산부인과의 신생아실에 빈자리가 적지 않다. 이날 통계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류효진 기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마침내 1명에도 못 미치는 0.98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아기 수가 1명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다. 이로써 한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전시 등 특수상황을 제외하곤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합계출산율 0명대 국가’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어느덧 30만명 초반대까지 떨어진 신생아 수는 올해 20만명대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다.
◇’세계유일+사상최초’ 저출산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8년 출생ㆍ사망통계 잠정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35만7,800명)보다 8.6% 감소한 32만6,900명이었다. 이는 1970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저치이자 30년 전(1988년 63만명)의 반토막 수준이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02~2016년 사이 15년 가까이 40만명대를 유지했지만 2017년 처음 30만명대로 낮아진 이후 2년 연속 급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합계출산율(0.98명)은 역대 최저였던 전년(1.05명)보다 더 낮아졌다.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것도 사상 처음이다. 지난 2005년 1.08명까지 떨어지며 충격을 던졌던 합계출산율은 정부가 각종 저출산 대책을 내놓으며 한동안 1.1~1.2명 선을 횡보했지만 이른바 ‘삼포(연애ㆍ결혼ㆍ출산 포기) 세대’ 현상이 심화된 2017년 1.05명으로 추락한 후, 급기야 1명선마저 붕괴됐다.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선이 2.1명임을 감안하면, 지난해 출산율은 ‘인구가 반토막 나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0명대 출산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2016년 평균 1.68명) 중 그간 합계출산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진 곳은 없다. 2010년 대만의 합계출산율이 0.9명까지 낮아진 적이 있지만 인구가 비교적 적은 나라였던데다, 지금은 1.1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은 역사적으로도 통독 직후 동독 지역, 동구 공산권 붕괴 후 소규모 공화국에서만 발견된 현상”이라며 “전쟁이나 경제위기 등 외부충격 없이 한국 정도 규모의 나라에서 벌어진 현상으론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20대보다 30대 후반 출산이 더 많아져
급격한 출산율 감소는 다양한 요인이 더해진 결과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30대 초반(30~34세) 여성 인구가 지난해 5% 감소(2017년 164만9,000→2018년 156만6,000명)한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3년(2016~2018년) 연속 혼인건수가 감소한 점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산모의 고령화 추세도 뚜렷하다. 지난해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32.8세로, 10년 전(2008년 30.8세)보다 2세나 높아졌다. 35세 이상 상대적인 ‘고령’ 산모가 전체 산모에서 차지하는 비중(31.8%)은 처음 30%대를 넘었다.
특히 작년엔 30대 후반(35~39세)의 출산율(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ㆍ46.1명)이 처음 20대 후반(25~29세ㆍ41.0명)을 앞질렀다. 10년 전(2008년)만 해도 30대 후반 출산율(26.5)은 20대 후반(85.6)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만혼’이 일반화하며 출산 시기도 같이 뒤로 밀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상림 연구위원은 “(저출산 시기에는) 통상 출산율 감소와 출산 지연이 같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은 연령대는 30대 초반(91.4명)→30대 후반→20대 후반 순이었다.
급기야 올해는 인구의 자연증가(출생아 수-사망자 수)가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출생아 수(32만6,900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반면, 사망자(29만8,900명)는 역대 최고였다. 이에 따라 작년 인구 자연증가는 전년(7만7,000명)보다 61.3%나 급감한 2만8,000명에 불과했다. 최근의 인구 자연증가 추이(2015년 16만2,500명→2016년 12만5,400명→2017년 7만7,000명)를 감안하면, 올해 이 지표가 아예 마이너스로 꺾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출생아 20만명대 시대 진입?
이런 초저출산 기조는 당분간 바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출생아 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크게 △가임여성 인구△결혼한 여성 수 △기혼 여성이 낳는 자녀 수 등을 꼽는다.
하지만 지난해 20~39세 ‘가임기’ 여성인구(약 675만명)는 10년 전(2008년 773만명)보다 15%나 감소했다. 통계청은 2016년 발표한 ‘2015~2065년 장래인구추계’(중립적 추정에 기반한 중위 추계)에서 이들 인구가 2025년 606만→2030년 565만→2035년 510만명 등으로 계속 감소할 걸로 예측했다.
지난해 혼인건수 역시 전년보다 2.6% 감소한 약 25만7,000건으로, 2011년(32만9,000건) 이후 8년 연속 감소세다. 국내 출생아의 98%가 혼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고, 첫 아이를 낳기까지 약 15개월(2015년 기준)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혼인건수 감소는 출생아 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삼식 한양대 교수는 “올해 신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생아 수가 40만명대에서 30만명대로 떨어지는 데 약 15년이 걸렸는데, 불과 3년 만에 20만명대로 떨어진다면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고 그는 우려했다.
특히 한국은 통상의 출산 패턴마저 무력화되는 사회적 요인이 작용해 심각성이 더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삼식 교수는 “(선진국을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출산을 줄이다가 이후엔 다시 아이를 낳으며 합계출산율이 반등하는 탄력성이 관찰 되는데, 우리나라는 계속 하락만 거듭하고 있다”며 “학계에서 젊은층이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면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가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맞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 교육, 주거 등 근본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육아휴직 급여를 준다거나 출산장려금을 주는 등 일회성 현금을 쥐어주는 정책으론 역대급 저출산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