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cm만 파도 유해 나오는데…24년간 방치된 까닭은
보신 것처럼 지역이 개발되는 상황에서 천인갱 자리를 보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서 국내로 모시는 일을 서둘러야 할 텐데요, 저희 취재진이 전문가하고 같이 확인을 해봤더니 30cm만 파봐도 유해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방치가 된 것인지 고정현 기자가 이어서 이유를 따져봤습니다.
<기자>
20년 전 자신을 강제노역장 생존자라고 소개한 장 모 씨가 하이난섬을 찾아왔습니다.
일본군 소속 조선인으로 중간 간부 역할을 하며 숨진 강제노역 피해자를 직접 묻었다면서 천인갱 주변 곳곳을 매장지로 지목했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현재 천인갱이라 불리는 곳과 뒤편 수풀, 왼쪽 야산 등에 자신이 직접 묻었다며 사죄했습니다.
2001년 충북대 발굴팀 등이 이 중 극히 일부 구역을 발굴해봤더니 무려 165구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전문가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우은진/세종대 조교수(2001년 '천인갱' 발굴팀) : 시신을 또 놓고 또 발치에 다른 개체의 시신을 또 배치한다든가 이런 거는 집단으로 누군가가 죽었을 때 사망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고요.) 주변에 유해는 굉장히 많을 것으로 그렇게 추정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가 발굴전문가와 함께 이번에 새로 천인갱 부지를 파봤습니다.
특별한 정보 없이 발굴을 했는데도 2시간 만에 유해 1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퇴골부터 바스라 진 종아리뼈까지 여러 유골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요.
[오승래/민간 발굴전문가 : 지표면에서 35cm 정도면 그렇게 깊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수 시체를 여러 번에 걸쳐서 매장하느라 그래서 이렇게 깊게 묻을 여력이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정이 됩니다.]
유골 옆에 사기로 만들어진 단추도 발견됐습니다.
1940년대 당시 중국인들 것과는 확연히 달라 조선인들이 입었던 옷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SBS 취재진은 추가 발굴 여력이 안 돼서 전문 인력이 훗날 발굴할 것을 기대하며 현장을 보존해 놓고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인갱'은 왜 24년간이나 방치돼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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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입수한 미공개 '조선보국대 진상조사보고서'입니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지원위원회'가 중국 하이난섬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를 조사해 2006년 작성한 겁니다.
하지만 조사를 의뢰했던 재일 동포 학자가 "일본군의 집단학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며 승인을 거절했고 규정에 따라 공개조차 못 했습니다.
이후 하이난섬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는 없었고 2015년 위원회는 해산됐습니다.
위원회 업무는 행정안전부 산하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이 넘겨받았지만, 지원단은 "진상조사가 안 된 강제 징용 피해자 유해는 정부가 나서서 수습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 : 강제동원이 규명된 유해 봉안에 집중하고 있는 거고, 그렇게 개체성이 확인이 안 된 거는 민간단체에서 (유해 발굴을)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에요.]
과거사지원단에는 진상조사 기능이 없어 천인갱 유해 발굴은 사실상 민간에 떠넘겨진 셈입니다.
그나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해 발굴과 송환을 추진했던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정병호 평화디딤돌 대표/한양대 교수 : (우리 정부가) '사망 진단서를 떼어 와라', '유족 동의서를 가져와라'. 70년 전에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국경을 넘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든지.]
종전 이후 일본은 1백26만 위 이상을 자국으로 봉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9천8백21위에 불과합니다.
96%는 징병 됐던 군인이나 군무원 유해이고 강제 징용 희생자 등 민간인 유해는 4백55위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대부분 민간단체가 봉환해온 것이고 정부가 주도한 것은 고작 71위입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됐다 해외에서 죽거나 실종된 조선인은 최대 43만 명,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이들 대부분이 죽어서도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