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편지 - 베트남은 북한의 미래가 될 수있을까
[경향신문]
지난 1월30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기념품점에 베트남 국기인 일성홍기 티셔츠와 함께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담긴 원형 사진이 걸려 있다. 2월들어 하노이가 북·미 정상횓마 장소로 발표된 뒤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기념품점마다 새로 들어섰다.“베트남을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정한 것은 북한이 이미 하나의 승리를 거뒀음을 의미한다.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우호적인 땅에서 회담을 여는데 동의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희망했던 다낭이 아닌 하노이를 선택한 것 역시 북한에게는 또다른 승리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베트남은 개발모델이라는 점에서 미국에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지역과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절실한 베트남에도 좋은 선택이다. 결코 중단되지 않을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국제적, 외교적 지위의 상승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온 편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도착함으로써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7일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각국 언론은 회담을 하루 앞두고 주로 핵문제와 관련한 합의내용을 미리 짚고 있다. 반면에 베트남 언론은 차분하게 관망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당이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인 만큼 당의 노선에서 벗어나는 보도를 할 수없는 한계일 수도 있다. 베트남 유력 매체의 중견 저널리스트가 회담 개최장소로 하노이가 공표된 이후 그의 의견을 묻자 보내온 답신이다. 국제통으로 한반도 사안을 꼼꼼하게 점검해온 그의 편지를 통해 북·미 회담을 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을 소개한다.
두번째 북·미 회담을 앞두고 지난 2월25일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내걸린 인공기와 성조기 플래카드 밑으로 전통 모자를 쓴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베트남 국가주석그런데 왜 베트남의 외교적 지위를 높이는 데 뜬금없이 중국이 등장할까. 그는 “최근 몇년간 다낭이 중국의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야심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베트남의 동반자관계에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북한이 피했다고 본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전부터 미리 확보한 선택의 우위다.”고 말했다. 다낭은 지난해 3월 미국 항공모함 칼 빈슨호가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기항한 곳이다. 내놓고 중국과 맞서는 베트남과 아직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후방기지’가 필요한 북한의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가는 교통편으로 중국이 제공한 여객기를 사용한 데 이어 이번엔 중국 대륙을 종단해 하노이로 달려왔다.
#북한이 회담전에 이미 거둔 외교적 승리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거둔 외교적 성공 역시 간과할 수없다. 김 위원장은 28일 북·미 정상회담 뒤 응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및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정상외교의 무대가 사실상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에 제한됐던 북한이 김일성 주석 당시처럼 유라시아대륙 및 유럽과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중동 광폭외교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남 동료는 북한이 베트남의 향방을 바꾼 1986년 도이머이(쇄신) 식 개혁·개방을 도입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솔직히 김정은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데 어떻게 할 것인지가 빠져 있다. 베트남은 분명 북한이 개방할 경우 완벽한 본보기가 될 수있다. 하지만 김정은 통제력을 잃고싶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과 북한은 다르다. 우리는 수십년전 도이모이를 시작하면서 세계를 향해 새로운 국가로 나섰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바꾸기가 쉬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선 무언가 건설하기 쉽지만, 이미 경직된 룰로 세팅이 된 국가에서는 쉽지 않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거리에서 한 중학교 학생들이 2월27일 미국과 베트남, 북한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북한 판 도이머이(쇄신)에 회의적인 연유 베트남은 북한 처럼 1당(공산당) 독재 국가이되 ‘최고 존엄’ 1인이 전권을 갖는 체제는 아니다. 지도부내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말한 ‘경직된 룰’의 행간에는 이런 의미가 담겼으리라. 실제로 도이머이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만이 아니었다. 경제와 사회, 정치는 동시는 아니더라도 서로 얽히면서 함께 움직인다. 경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의 민주화로 이어진다. 북한이 망설이거나 최대한 안전장치를 하고 시작할 것임을 짐작케한다. 이와관련 팜반득 베트남 사회과학원 부원장은 26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우선 북한에 맞는 경제발전과 인민을 위한 체제를 만들면서 민주화를 하는 것, 인민의 안전과 공평을 함께 해결하는 것, 마지막으로 제재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외국과 관계정상화로 가는 것을 당부했다. 편지를 보내온 베트남의 동료는 그러면서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자체가 주는 의미에 무게를 두었다.
“베트남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아주 중요한, 첫번째 씨앗을 뿌리는 장소가 될 수있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쟁이 끝나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가입한다면 베트남은 매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상상하기 어렵다.” 베트남 전문가나 언론의 공개적인 입장과 다소 다른 부분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정전체제 또는 핵문제)’을 끝낼 것과 국제사회에 복귀할 것을 베트남과 진정한 친선관계의 전제로 달았다.
호찌민 시내에 있는 베트남 국부 호찌민의 영묘. 늘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베트남 외교부 사이트#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다가올 운명’ 남북한과 베트남이 맺어온 모순의 관계에 대한 소회도 잊지 않았다. ‘다가올 운명’으로 읽었다. “베트남은 우연히 과거 두 개의 코리아 및 미국과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여러번 도왔다. 남한은 미국을 도와 군대를 보냈다. 가까운 미래에 베트남, 남북한, 미국 모두가 포함된 무언가 일어나는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과 결단의 일단은 회담 종료뒤 28일 발표될 공동성명에 담길 것이다. 물론 지난해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그랬듯이, 하노이 공동성명 역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