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CBS 대기자 "YTN 저녁뉴스에서 뵙겠습니다"
변상욱 CBS 대기자가 오는 3월 말 정년퇴임한다. 1983년 CBS에 입사한 변 기자는 '대기자'란 호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입사 당시 직종은 기자가 아닌 PD였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CBS는 보도기능을 빼앗겨 공식적으로 기자를 뽑을 수 없었고 수습 교육 때 테스트를 거쳐 기자로 선발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35년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소회가 궁금해 지난 19일 서울 합정동 한 커피숍에서 변 기자를 만나 35년 6개월의 기자 생활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 계획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공식적으로 3월 말이면 CBS에서 정년 퇴임하시잖아요. 소회가 궁금합니다.
"CBS에서 35년 6개월을 근무하고 떠납니다. '순삭'(순간 삭제)이라는 말을 쓰던데 그런 느낌입니다. CBS 기자로서 마지막 인터뷰라 신앙고백 조로 이야기하는 걸 이해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불구덩이 속에서 타다 남은 그루터기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합니다. 함께 싸우며 뛰던 언론계 동료 중에는 좌절해 떠난 사람도 있고, 감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고, 강제로 잘려나간 사람도 있어요. 격무로 병을 얻어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도 있고요. 별로 한 일도 없이 운이 따라 고비들을 어찌어찌 넘기고 기자로 정년퇴직을 맞는다니, 불구덩이 속에서 운 좋게 건져진 그루터기처럼 느껴집니다. 신앙적으로는 은총이라 받아들입니다.
많은 언론인이 저마다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싸웠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자기 자리를 지켜준 많은 언론인이 있어 이 땅의 저널리즘이 명맥을 이어온 겁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면 그물로 잡은 것이지 그물코 몇 개로 잡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지금 형편은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고 언론사들이 신망을 잃어도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언론인들이 있음을 헤아려 격려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책상 정리하셨어요?
"아직 안 했습니다. 책과 자료, 원고들이 많아서 이제부터 밤에 조용한 시간에 조금씩 짐을 꾸리려 합니다. 책상 정리를 시작하면 CBS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하겠죠? 가지고 있던 책들 상당수는 회사에 기증해 서가에 꽂혀 있는데 짐 정리를 하면서 소장할 것들 약간만 챙기고 다시 회사 서가에 꽂으려 합니다."
- 회사에서 반응은 어때요?
"<김현정의 뉴스쇼>에도 아쉬움이 있고 디지털 담당 부서에도, TV 본부에도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저도 아쉬움이 있고 후배들도 그런 심정들을 이야기하죠. SNS로는 나름 팔로어가 많은 편이라 회사 콘텐츠 전파에 더 힘이 되어주면 좋은데 그전 같지는 않을 터여서 미안도 하고 후배들도 서운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더 넓은 무대로 나가라는 격려도 많습니다. 종종 깜짝 출연으로 CBS 애청자들과 만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댓꿀쇼'는 본 방송 이후의 별책 부록인데 후배들과 즐거운 뒷담화를 가져보려 합니다. "
- FA(자유계약) 느낌은 어때요?
"FA시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요. 어디에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입을 떼기도 어렵고. 살짝 황망한 느낌인데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곳들이 있었으니 이만하면 분에 넘칩니다. 다행히 YTN에서 일찍부터 함께 하자고 권유를 해 긴 방황이나 고민 없이 퇴직 후가 결정됐습니다. 기자가 계속해 뉴스 제작에 참여하고 시청자들을 만나면 그걸로 차고 넘치는 거죠. YTN 저녁 뉴스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 5공 정권 시절 보도기능을 빼앗긴 CBS에 PD로 입사해 기자로 일하셨잖아요? 뒤돌아보면 어떠세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위장 취업이 돼버렸습니다. 기자를 뽑는 게 불법인 CBS가 PD 공고를 내 사람을 채용한 뒤 그중 일부를 기자로 활용하려던 상황이었죠. 수습 교육 때 내부에서 다시 테스트를 거쳐 제가 기자로 선발된 게 위장 취업의 전말입니다.
프레스카드 없는 기자이니 밖에 나가 취재하면 사이비 기자인 셈이죠. 그래도 CBS였기에 훌륭한 어른들, 꿋꿋한 선배들을 늘 지켜보고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고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기성 방송사에 몸담았더라면 오늘의 제 모습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것 역시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하나뿐,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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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대기자가 정년퇴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영광
- 프레스카드 없는 기자가 직면하는 외압은 어떤 건가요?
"일단 관공서 출입이 금지입니다. 정부 부처나 기관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나 정책자료도 받을 수 없죠. 정부 기관 기자단에 들어 있지도 않고 취재가 허용된 언론사도 아니니 기업에서도 취재 관련해선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 기자실 기사와는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보고 취재해야 했던 겁니다. 보도자료를 받아들고 그것에 입각해 질문을 하고 보도자료 준 사람에게서 설명을 듣는 '받아쓰기 저널리즘'으로 시작하지 않고, 현장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늘 쌍방향의 저널리즘을 생각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 출입처가 아예 없었겠네요?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프레스카드가 여전히 존재하고 정권이 프레스카드 발급을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이니 사실상의 기자 허가제인 셈이었고 언론기본법에 의해 뉴스를 금지당한 처지에서 출입처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죠. 출입처가 없으니 민주화운동단체나 빈민·철거민 등 사회운동단체, 농민단체나 노동운동단체 불온단체들이 주 출입처였습니다.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취재를 하다 보니 취재인지 운동인지 애매했고 걱정도 들었죠."
- 운전면허 없으신 거로 알아요.
"네.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했고, 약간의 색약도 있어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80년대 말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저술을 만나면서 '하나뿐인 지구', '느리게 살기', '단순한 삶'이라는 주제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의 변혁에는 정치투쟁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과 의식의 변혁도 중요하다는 걸 생각한 겁니다. 환경운동을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꾸려나가던 환경운동가들과 만남도 큰 가르침이 됐고요.
수습 시절부터 따랐던 고희범 선배(전 한겨레신문 사장, 현 제주시장)가 술자리에서 기자가 자가용 타고 풍족해지면서 시내버스나 연탄가스 기사가 사라져버렸다고 한탄하며 저널리즘과 민중론을 고민한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 기자 생활하시면 아쉬움은 없나요?
"출입처 경험이 너무 일천해 국가정책이나 살림살이, 권력의 메커니즘 파악에 미숙한 것이 아쉽죠. 정치부의 여당 야당 반장, 국회 팀장, 청와대 출입기자,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회부장, 특파원, 보도국장은 물론이고 과거 이름으로 교육, 상공, 복지, 국방, 재경, 대기업 출입처를 제대로 나가본 게 없으니까요.
시경, 법조, 서울시청이 제대로 맡아본 출입처의 전부입니다. 그럼 36년을 뭘 한 걸까요?(웃음) 주로 특집취재, 시사제작팀 지휘, 앵커, 지역근무가 6번, 그러다 건너뛰어 총괄본부장을 했으니 특이한 경력이기도 합니다."
- 기자는 항상 아이템 고민을 하잖아요. 기자님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좋은 아이템 잡는 비법 있을까요?
"아이템을 찾기 위해 즐겨찾기에 등록해 둔 곳들이 상당히 다방면으로 많습니다. 신문도 중앙지 지역신문을 두루 읽고, 전문지들을 환경, 여성 등등 여럿 읽고, 미디어비평지도 읽고, 종교신문, 대학신문도 읽습니다. 검색해도 뉴스 외에 웹 문서와 블로그도 읽고 특히 댓글들을 주의해서 읽죠.
가능한 광범위한 정보수집 작업을 오래 계속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융합의 능력도 생깁니다. 제 이름을 내건 <변상욱의 기자수첩>을 14년 정도 해왔는데 10년쯤 하니 조금씩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됩디다."
-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제가 방송 스튜디오에는 요약된 원고나 메모를 들고 들어가니 다들 몰랐을 텐데, 검색하고 읽으며 요약하고 다시 원고로 작성하는 작업이 늘 반복됐습니다. 펜으로 쓴 것만 A4 용지로 요약 정리한 것이 스무 장 정도 되죠? 50분 길이의 유튜브 용인데 이렇게 요약해 두고는 카메라 앞이니 원고 안 보고 방송하죠.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해 내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Practice! Practice!"
- 기자로서 보람은 뭔가요?
"기자의 보람은 주인공을 만나서 직접 듣는 게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의미 있는 현장에 가보는 것도 가슴 뛰는 일이고. 그걸 남한테 전해 줄 수 있다니 즐겁고, 그 결과로 세상이 조금 바뀔 때도 있으니 보람 있죠. 그게 어쩌다 일생에 한 번이 아니잖아요. 노력에 따라 때때로 벌어지니 정말 멋진 직업입니다."
"본령을 지키고, 멀리 보고, 흔들리지 말고, 늘 조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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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대기자ⓒ 이영광
- 기자에게도 유혹과 외압이 늘 있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었나요? 유혹이 많았을 거 같은데.
"누구나 흔들리면서 나아가고 흔들리면서 꽃을 피운다는 시(詩)도 있는데 저도 비틀거린 흔적이 많습니다. 다만 무사히 건너왔다면 결국은 수치심이 힘이 된 거죠. 그리하면 창피하고 그리하지 못하면 부끄러워 못 견딜 거 같고. 무언가에 욕심이 앞서거나 두려움이 커져 수치심을 눌러 버리니 문제겠지만 그런 점에서 신앙과 주위의 좋은 선후배들이 도움이 컸죠."
- 언론인이 정년퇴직하고 언론인으로 남는 경우가 없어서 아쉬운데.
"기자로 정년을 맞고 다시 이어 기자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예가 별로 없는 건 사실입니다. 언론계에서 인정해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롤모델로 남는다면 저도 뿌듯할 겁니다. 롤모델감이 안 된다 해도 저로서는 행복하니 족합니다. 우리 사회는 언론계와 정계·재계의 벽이 너무 허물어지고 경계가 모호해 언론이 변질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대변인이 되고 정치경력을 뒷배로 삼아 언론사 사장까지 차지하는 건 난센스라고 봅니다. 폴리널리스트도 아니고 어디 기관이나 기업의 홍보 담당도 아닌 기자로 일하고 또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다니 분에 넘칩니다."
- 10년 전 저와 인터뷰 하시며 기자는 연필이라고 하셨잖아요. 여전히 기자는 연필처럼 자신을 깎고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자가 늘 날카롭게 날이 서 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다만 당시는 처절하게 싸워야 할 일들이 많은 시대였죠. 달라지는 시대를 감안하면 날카로움이란 표현과 함께 다른 표현을 쓰고 싶네요.
신영복 선생께서 글씨를 가르치시면서 주셨던 구절이 있는데 '춘풍대아 추수문장'입니다. '대아'는 시문 등을 이야기하죠. '문장'은 보고나 기록을 가리키고요. 결국 문학적 문장은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 안아야 하고, 기록과 보고는 가을 계곡물처럼 차갑고 맑아 명징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 그렇게 하려면 기자에게 필요한 건 뭔가요??
"시쳇말로 깡다구?(웃음) 솔직히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압박과 유혹, 타협을 놓고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운 길을 가려면 결기도 있어야 하고 싸움꾼도 되어야 하니까요. 나이가 들어보니 역시 어른들 말씀대로 자기와의 싸움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것도 고민하며 품고 가야 합니다.
회색은 검어지지 다시 희어지지 않는다고 늘 당부합니다. 한번 검어지면 희어지는 쪽으로는 가기 힘듭니다. 언론사에서 데스크들이 대충대충 넘어가고 후배들이 그걸 배우면 언론이라는 우리의 직업사회가 수렁으로 추락합니다. 한국 언론이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죠."
- 말씀하신 로비리스트인 박수환 뉴스컴 대표 문자 공개되었잖아요. 거기엔 기사 거래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오던데 어떻게 보셨어요?
"기업체와 언론 사이에서 로비하는 브로커를 통해 거래한 거죠. 어느 날에든 기성 언론은 기업에게서 버림받을 겁니다. 디지털로 무장한 새로운 플랫폼과 기업의 브랜드 저널리즘이 훨씬 홍보 효과가 큰 데 언론사에 왜 공을 들이겠습니까? 변칙적으로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은 억지로 떼를 써 얻어먹는 거고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종말을 맞이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국민대 초빙 교수로 강단에 서고, YTN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심용환 작가의 팟캐스트 <역공>에 고정출연하는 게 당분간 이어질 활동입니다. 가장 고민스러운 건 기독교 관련인데 연구관찰자로서 동행하고 기관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건 접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려요,
"젊은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데스크나 지휘관의 자리에 있는 후배들이라면 젊은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주는데 더 세심해야 합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과거의 것으로만 밀지 말고 무얼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끌어주길 부탁합니다. 본령을 지키고, 멀리 보고, 흔들리지 말고, 늘 조심하기를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