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진거부에 민심 폭발… 곳곳 불타고 약탈·탈옥도 [세계는 지금]
아이티 반정부 시위 격화 / 경찰 유혈진압에 사망·부상자 속출 / 모이즈 “폭력조직 떠밀려 사퇴 안해” /경제안정 대책도 내놨지만 무용지물 / 2018년 7월엔 유가인상으로 거센 저항 /전·현직 관리 10여명이 40억弗 횡령 /페트로카리베 스캔들 등 부패 심각 / 수면 아래 잠재됐던 불만 결국 터져
◆시위 과격 양상 속 대통령 퇴진 불가 선언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부정부패와 경제실정 책임을 지고 모이즈 대통령이 퇴진할 것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며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이날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뒤 아이티 경찰은 총격으로 진압했지만 시위대는 움츠러들기는커녕 더욱 분노했다. 대통령궁을 공격하고 공항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곳곳에서 타이어 더미가 불탔다. 학교와 상점은 문을 닫았다. 마실 물을 찾기 위해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거리를 서성였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던 지난 15일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현지발 보도에서 “폭력과 위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더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 포 포르토프랭스=AP연합뉴스 |
주유소와 은행, 상점 등에서 약탈도 모자라 지난 12일엔 한 교도소에서 수형자 78명이 집단 탈옥하는 일도 발생했다. 시위대가 한 손에는 돌을 들고, 한 손에는 사망한 시위대의 시신을 잡아 끌며 앞으로 나아가는 충격적인 모습이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조브넬 모이즈는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가 사임하지 않으면 온 나라를 불태우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은 필수 인력을 제외한 공관 직원과 가족들을 철수시켰고 캐나다는 자국 대사관을 잠정 폐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 포르토프랭스=AP연합뉴스 |
모이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유가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저항이 일어 취소한 일이 있었다. 정부가 휘발유 38%를 포함해 디젤 47%, 등유를 51% 각각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최소 7명이 사망했다. 이때에도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모이즈 대통령은 총리를 교체하는 선에서 수습했다.
중남미 거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자국 영향력을 높이려는 목적 하에 원유를 헐값에 꿔줬다. 페트로카리베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망했고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자국의 극심한 경제난과 초인플레이션으로 자신의 대통령직마저 위태로운 처지다. 결국 지난해 페트로카리베 거래는 중단됐다. 베네수엘라가 2005년 페트로카리베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국제 원유가격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위기가 시작된 2015년, 베네수엘라로부터 무상 또는 싼값에 원유를 공급받던 국가들로 파장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모이즈 대통령 사퇴까지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외교소식통은 “모이즈 대통령이 시위대의 거센 저항에 일부 요구를 계속 수용하면서 주도권 자체를 상실한 상황”이라며 “불안정한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아이티의 한 시민은 가디언에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