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폭탄’ 못피했다…재계 “기업만 부담” 반발
2라운드에도 이변은 없었다. 법원은 이번에도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으로 편입하는 수당은 일부 감소했지만 사실상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는 22일 전·현직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차 노조) 소속 2만7365명의 근로자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단이다.
통상임금이란 노동자가 소정의 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다. 통상임금은 심야수당·초과근로수당·퇴직금 등을 계산하는 기준 금액이다.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항목이 늘어나면, 이에 연동한 각종 인건비도 덩달아 상승한다. 통상임금에 재계 전체의 이목이 쏠려있는 이유다.
2017년 8월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기존에 통상임금 항목으로 산정하지 않았던 일부 급여항목(정기상여금·중식비·토요근무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2일 2심 재판부도 큰 틀에서 같은 판결을 내렸다. 상여금 등이 매달 일정한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나왔고(정기성),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했으며(일률성), 근로자의 업적·성과와 무관하게 고정적으로 지급했다(고정성)는 것이다.
달라진 것도 있다. 1심 재판부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던 일부 급여항목(중식비·가족수당·휴일특근개선지원금)을 2심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중식비·가족수당이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률성’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휴일특근개선지원금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의 휴일근로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지급한다는 사실을 고려했다.
덕분에 기아차가 전현직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다소 줄어들었다. 1심 판결로 기아자동차는 9777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충당금이란 향후 비용 지출에 대비해 장부상 손실 처리하는 비용이다. 1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이어진다면 9777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로 이 금액은 다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575억원을 기록했다. 통상임금 소송 전인 2016년(2조4615억원)과 비교하면 1조4000억원 이상 감소한 수치다.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은 지난해 연말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에서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하면서 인건비가 증가해 잔업·주말특근을 줄였다”며 “이로 인해 8만5000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이 과거 3년 2개월분(2008년 8월 ~2011년 10월)에 대한 판결이고, 이 시기에는 기아차가 휴일특근개선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인해 사측이 추가 지급해야 할 인건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기아차는 추후 정확한 추가비용을 산정할 예정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재계는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심히 유감스럽고 승복하기 어렵다”며 “자동차 산업이 국가적 위기를 맞은 상황을 간과한 채, 법원이 현실과 괴리한 형식적 법 해석에 머물렀다”고 비판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도 “이번 판결로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대법원은 국가·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3년간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은 대체로 노측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현대위아·한온시스템·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측은 모두 1심에서 패소했다. 반면 금호타이어는 유사한 소송에서 사측이 승소했다.
기아자동차 노사는 통상임금 판결 결과를 떠나 노사합의를 재차 시도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소송과 별개로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통상임금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본회의(5회)·실무회의(9회)를 열었다”며 “지속적으로 노사가 자율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강상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도 “사측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여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면서 “통상임금 특별위에서 조기에 원만히 타결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