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보다 부모 재력… 그래도 우리 부모님 원망하진 않아요"
대학원생 서종수(가명·24)씨는 거실에 TV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부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중견기업에 다녔고, 휴일이면 집에서 책을 읽었다. 서씨가 "부모님이 입시에 대한 감(感)이 좋았고, 집안 전체가 공부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대학 시절 부모는 "여행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한 유럽·북미 여행이 큰 추억이 됐다. 지금은 부모의 모교를 거쳐, 또 다른 명문대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사진 스튜디오 직원 허주민(가명·24)씨는 중소기업 다니는 아버지와 사회복지사 어머니 밑에서 컸다. 고교 시절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입을 못 뗐다. 대학 때 사진학원에 등록했다가 학원비만 월 100만원 넘고 장비 값도 수십만~수백만원 들어 석 달 만에 포기했다. 지금 직장 면접 보던 날, 휴지 한 통을 다 쓸 만큼 울었다. 얼마 전 어머니가 허씨에게 "너를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했다. 허씨는 "부모님도 괴로웠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지금 20대는 1990년대에 태어나 유치원 때부터 경쟁하며 자랐다. 단군 이래 "공부하라" "노력하라" 소리를 이렇게 많이 듣고 자란 세대가 없다. 하지만 그런 노력 끝에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취재팀이 지난 두 달간 20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60명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노력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였다. '노력'을 대신하는 키워드가 '부모'였다.
이들은 "부모의 지원이 노력할 여건 자체를 결정한다"고 했다. 고교 시절 부모가 과외비를 얼마나 썼느냐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대학을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 '고비용 스펙 경쟁'에서 나가떨어질 사람과 남을 사람을 가르는 선이 부모였다.
대형 홈쇼핑 회사 직원 정예진(가명·24)씨는 치과의사 아버지, 약사 어머니 덕에 300만원 가까운 월급을 전액 적금 들었다. 월 70만원씩 받는 용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정씨는 "내가 생각하는 안정적인 삶은 부모만큼 사는 건데, (저와 달리) 자기가 번 돈으로 온전히 자기 생활비를 써야 하면 슬프지만 계층 이동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부모'라는 격차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복지관 직원 정수경(가명·26)씨는 사회복지사 시험을 2년간 준비하다 포기하고 지금 직장에 들어갔다. 운전하는 아버지, 마트 직원인 어머니에게 더 기대기 힘들었다. 정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해 씻고 눕는다. "더 공부할 수 있게 부모님이 지원해줬다면 …"라고 했다. 그러나 부모를 원망하는 이는 드물었다. 이들은 오히려 "고생하신 거 아니까, 기대만큼 성취하지 못한 게 미안하지 아빠·엄마 탓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중소기업 비서 박다미(가명·24)씨는 대학 전공도, 취업할 회사도 전부 스스로 검색해서 찾았다. 초등학교 때 이혼한 어머니는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월세방에 산다. 박씨는 "엄마도 빚이 있고, 저도 빚(학자금 대출)이 있어 따로 살며 '개인 플레이' 하고 있지만 장차 같이 살면서내가 엄마를 부양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뷰티 관련 유투버'로 성공해, 어머니가 기자에게 "어떻게 딸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우셨어요?" 소리를 듣게 해주는 게 박씨의 인생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