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이사회 의장 떠나는 최태원의 지배구조 개편 '큰 그림'
SK(주)는 SK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자리한다. SK(주)가 SK이노베이션(33.4%)·SK텔레콤(25.2%)·SK E&S(90%)·SK네트웍스(39.1%)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고, 이들이 다시 유관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즉, SK(주) 지분만 충분히 보유하면 자산 200조원 규모의 107개 계열사를 직·간접적으로 거느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인 만큼, 그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주)의 대표이사 회장직과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했다. 상장기업은 주주가 이사회에 경영을 위임하고, 이사회는 대표이사에게 다시 통상적인 경영을 위임한다. 대신 중요한 안건은 이사회를 개최해서 의결하고, 법이 규정한 매우 중요한 사안의 경우 모든 주주들이 모여서 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주주총회). 즉, 최태원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 자격으로 통상적인 경영을 수행하면서,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상법 393조가 규정한 경영상 중요한 안건까지 처리했다. 그만큼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 SK(주)가 중요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비단 SK그룹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 기업이 대부분 이런 지배구조를 택하고 있다. 경영상 의사 결정 단계를 축소해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 1087개 상장사 중 935개사(86%)의 대표이사는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SK(주)는 다음달 5일 이사회를 열고 최태원 회장의 이사회 의장직 사임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사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사회)의 수장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영진과 주주의 입장이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주주들은 당장 보다 많은 배당금을 원하는데, 경영진은 향후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배당 유보를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 경영진 입장을 강하게 대변할 수 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이사회에서 경영진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최태원 회장이 SK(주)의 지배력을 일부 스스로 내려놓는 건 이와 같은 지배구조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다소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사외이사 중에서 의장을 선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독립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갖추면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거나 주가를 부양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 최 회장은 SK(주)는 주가를 끌어올려야하는 입장이다. 통신·반도체 부문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SK텔레콤이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하는 방식이나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SK(주)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문제는 SK하이닉스가 지난해 SK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84.3%(20조8438억원)를 창출하는 그룹 최대 계열사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SK(주)의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SK(주)의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지 않으면 양사 합병시 지배력이 약화할 수 있다. 지주사가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배당을 늘려 주식 투자자를 확보하거나 신사업에 투자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