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블랙박스]
“죽을 용기로 일하실 분” 찾던 큰 형
“내 동생 돈 빼앗아 나누자”며 강도 범행 사주대구지방·고등법원 청사/이승규 기자“내 동생 돈을 빼앗아 나누자”며 사람을 모아 남동생을 습격한 친형과 가담자에게 재판부가 징역형을 선
고했다.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만난 이들은 돈을 빼앗아 나누기로 합의했지만, 피해자의 거센 저항에 밀려 달아났
고 결국 덜미가 잡혔다.
31일 대구
고법 형사2부(재판장 양영희)는 강도상해·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
31)씨 등 4명에게 징역형을 선
고했다
고 밝혔다. 이씨와 강모(
21)씨 등 2명은 징역 3년 6개월을 받았
고, 또 다른 공범 김모(
26)씨와 강모(
26)씨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징역 6년 4개월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7월 2일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동생(
25)을 습격해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히
고 달아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 동생 돈 빼앗아 나누자”며 친형이 범죄자 모아
지난해 6월 이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집 글’을 올렸다. 이씨는 ‘죽을 용기로 일하실 분, 밑바닥인 분들 오세요’라는 제목으로
고액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본 김모씨 등 3명이 이씨에게 연락했다.
이씨는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집에 동생이 모은 돈이 좀 있다. 이걸 빼앗아서 나누자”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집 주소와 가족들의 외출 시간, 공동 현관 비밀번호, 방범 카메라 위치 등을 김씨 등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김씨 등 3명은 나흘간 대전에서 합숙하며 범행 계획을 짰다. 이들은 “이씨의 동생이 혼자 집에 있을 때를 노려 제압한 뒤, 돈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 가로채자”
고 합의했다. 나이가 많은 강씨가 범행 도구를 살 돈과 차비를 댔
고, 김씨와 또 다른 강씨가 직접 대구로 이동해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피 흘리며 집 지켰는데, 범인은 형
지난해 7월 2일 오후 2시, 김씨 등 2명은 이씨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씨 동생이 인터폰을 통해 누구인지 묻자, 이들은 “택배가 왔다”
고 둘러댔다. 이씨 동생이 문을 조금 열어주자 김씨가 두 손으로 문을 닫지 못하게 붙잡았다. 이 틈으로 강씨가 들이닥쳤다. 이들은 이씨 동생의 머리를 철제 공구로 여러 차례 내리쳤다.
하지만 이들은 계획대로 돈을 빼앗지는 못했다. 이씨 동생이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오히려 강씨 멱살을 잡
고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히 반격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강씨 등은 달아났다. 이씨 동생은 이들을 신
고했
고, 결국 경찰이 검거했다. 범행을 처음 기획한 형 이씨, 범행 자금과 장소 등을 제공한 강씨도 체포됐다.
형 이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명확한 진술을 내놓지 않았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동생의 돈을 빼앗자”며 범행을 기획했던 이씨는 정작 동생이 얼마를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고 한다. 실제로 당시 이씨 동생은 많은 돈을 보유하
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 형제는 평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고 한다. 이씨 동생은 범행을 기획한 장본인이 자신의 친형이란 사실을 알
고 적잖이 놀라
고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형 이씨는 평소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형이 주장한 심신미약, 재판부는 기각
지난 1월
25일 1심 재판부는 누범 기간 중 범행을 저지른 김씨에게 징역 5년을, 형 이씨와 이씨 동생을 공격한 강씨에게는 징역 4년 6개월을 선
고했다. 범행 자금 등을 댄 또 다른 강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
고했다. 이들은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지난
14일 열린 2심 공판에서도 징역형이 선
고됐다.
형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건 당시 우울증 등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였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지만, 범행 당시 정황 등을 감안하면 심신 미약을 인정하기 어렵다
고 본 것이다.
이씨 동생을 폭행한 강씨 측은 “피해자에게 입힌 상처가 크지 않아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
고, 돈을 빼앗지도 못해 강도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 동생이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된 점, 돈을 빼앗기 위한 목적으로 폭행을 가한 점을 볼 때 각각 상해죄와 강도상해죄로 인정된다
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씨 등이) 친동생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하
고 주도한 만큼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강도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피
고인들이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가 선처를 바라는 점 등을 감안했다”
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다만 범행 장소를 제공한 또 다른 강씨에겐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
고, 누범 기간 중에도 같은 범행을 반복했다”면서 원심보다 높은 징역 6년 4개월을 선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