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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밥 먹으러 오라"…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품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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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9시45분.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27)씨는 회색 정장과 검정 코트 차림으로 약속된 시간보다 15분 일찍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 후 경찰 조사를 마친 뒤 ‘사과하고 싶다’며 첫 행선지로 곧장 광주를 찾은 전씨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전씨가 등장하자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 및 피해자들과 광주 시민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지난 1980년 5월18일 이후 43년을 기다린 눈길이 그에게 쏟아졌다. 전씨 일가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5·18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어 이날이 첫 사죄 행보가 되는 날이었다.

전씨는 이날 마중 나온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세 공법단체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과 잠시 비공개 면담을 나눈 후 만남의 장이 마련된 리셉션홀에 들어섰다. 그는 자리에 나온 유족 및 피해자들과 함께 일어나 잠시 묵념을 한 뒤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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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피해자와 유족들과 만나 회견을 하며 사죄의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전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고서 잠시 침묵하더니 “안녕하십니까,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입니다”는 말과 함께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저같이 추악한 죄인에게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며 “이렇게 늦게 찾아뵙고,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첫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인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학살자”라면서 “가족을 대변해서 인정하고 정말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군부 독재와 두려움 속에서 용기로 이겨낸 광주 시민 여러분께서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5·18 당시 자녀를 잃은 오월어머니회 할머니들은 담담히 지켜보다가 이윽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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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피해자와 유족들과 만나 사죄의 뜻을 밝히고 큰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이에 정성국 공로자회장은 “할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고 사과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를 방문한 우리 전우원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5·18 진상 규명과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환영의 말을 건넸다. 이날 발언대에 나온 유족과 피해자 대표들도 격려의 말들로 화답했다.

전씨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과 계기에 대해 “교회 봉사활동을 통한 깨달음과 반성이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제 선택을 지지하시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신다”고 밝혔다. 조부친인 전 전 대통령과는 생전에 5·18과 관련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이날 자리에 앞서 따로 공부를 했다고도 했다.

전씨는 회견을 마치고 5·18 피해자와 유족들 앞에서 거듭 사죄의 뜻을 밝히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기념관 뒤편에 5·18 희생자들의 성함이 새겨진 팻말이 한데 모인 추모관을 찾아 애도한 뒤, 곧장 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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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글.(사진=김범준 기자)

전씨는 이날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와 함께 100여명의 광주 시민들과 취재진의 맞이 속에서 5·18 추모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묘지 입구 ‘민주의 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는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전씨는 김범태 관리소장의 안내와 함께 5·18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 묘, 행방불명자들의 묘, 아직까지 신원 확인이 안 된 ‘무명 열사의 묘’들을 차례로 참배했다. 전씨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참배한 묘비와 비석에 새겨진 희생자 사진들을 직접 하나하나 닦고 묵념하며 애도를 이어갔다. 이를 지켜본 한 시민은 “본인 외투로 하지 말고 이 수건으로 하라”며 건네자 전씨는 “괜찮다”며 정중히 사양하기도 했다.

곳곳에 참배를 마치고 나온 전씨는 다시 민주의 문 앞으로 와서 “이렇게 와서 보니까 정말 죄송하고 창피한 마음뿐”이라며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곳에 묻힌 5·18 당시 중학생이던 고(故) 문재학 군의 모친 김길자씨는 전씨의 손을 꼭 잡고서 “아직 젊으니까 건강도 잘 챙기시라”고 말하며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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