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술 좋아하는 이유…‘술 취한 원숭이’ 가설 입증
검은손 거미원숭이. 위키피디아
인간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수백만 년 전 유인원 조상이 발효된 과일을 골라 먹던 데서 시작됐다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입증됐다. 원숭이가 알코올(에탄올)이 함유된 과일을 즐겨 먹고 소변에서도 알코올의 2차 대사물질이 검출돼 가설이 과학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에 따르면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인류학자 크리스티나 캠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검은손 거미원숭이’(Ateles geoffroyi)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발표했다고 연합뉴스가 2일 전했다.
연구팀은 파나마 바로콜로라도섬에 서식하는 거미원숭이가 먹다가 버린 과일을 수거·분석해 알코올 농도가 1∼2% 정도인 것을 확인했다. 이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익은 과일의 당을 먹는 발효균을 통해 자연 발효되며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거미원숭이 6마리의 소변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5마리의 시료에서 알코올의 2차 대사물질이 검출됐는데 이는 알코올이 그냥 거쳐 가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캠벨 교수는 “야생 영장류가 인간의 간섭 없이 과일 속의 에탄올을 섭취한다는 점을 의심의 여지 없이 처음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인간의 알코올 소비가 익은 과일을 통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에탄올을 먹어온 영장류의 과일 섭취 행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은 UC 버클리의 생물학자 로버트 두들리 박사가 2014년 <술 취한 원숭이:인간은 왜 술을 마시고 남용하나>(The Drunken Monkey:Why We Drink and Abuse Alcohol)라는 저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영장류가 좋아하는 과일 중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알코올 농도가 7%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밝혀졌지만,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이런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다.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캠벨 교수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두들리 교수 등과 연구팀을 꾸려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거미원숭이가 냄새를 맡고 잘 익은 것만 골라 먹는 호보나무 열매는 열대 과일이다. 거미원숭이의 주식이자 중남미 원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발효주를 만드는 데도 이용돼 왔다.
캠벨 교수는 “원숭이들이 칼로리 섭취를 위해 에탄올이 있는 과일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칼로리는 에너지를 뜻하는 만큼 발효된 과일을 통해 발효가 안 된 것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얻었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조상도 원숭이처럼 처음에는 칼로리 섭취량을 늘리기 위해 에탄올이 있는 잘 익은 과일을 골라 먹었지만, 액체 형태로 알코올을 정제하면서 심리적·쾌락적 효과를 노리고 알코올 남용에 빠지게 된 것으로 연구팀은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원숭이들도 발효된 과일을 먹고 인간처럼 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두들리 교수는 “취할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과육으로 배가 채워져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발효된 과일을 통해 먹이에 대한 항균 효과나 효모균 활동, 사전 소화 등과 같은 생리적 이득을 얻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간이 알코올에 끌리는 성향이 영장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생각은 알코올 남용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캠벨 교수는 이런 생각이 확산한다면 “알코올의 과도한 소비는 당뇨나 비만처럼 영양 과다 질환의 하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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