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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반의반 토막난 주식…내 노년은 누가 책임지나

보헤미안 0 288 0 0

지난달 28일 오전 장중 2600선이 붕괴된 코스피 지수.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연초부터 매우 기분이 착잡하다. 참아야 했는데, 무시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찾았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욕을 내뱉은 뒤 고개를 돌렸다. 내 주식계좌 이야기다.

시퍼런 색으로 뒤덮여 있는 내 주식 종목들을 하나하나 보며 1000만 여느 개미들과 다를 바 없이 오늘도 후회한다. 왜 내가 이걸 샀을까부터 시작해 왜 내가 그때 물을 탔을까, 왜 내가 이걸 팔지 않았을까 등등. 특히 지난해 뜨거웠던 케이(K) 모 종목을 보며 그런 생각은 최고조에 달했다. 최정점 수익의 반의 반의반 토막이 난 것을 보고 왜 그때 내가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려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괴로워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매도 타이밍, 매수 타이밍을 놓치며 또다시 자책한다. 그럼에도 이를 놓지를 못하고 있다.
 

월급 말고 다른 수익을 찾아



투자의 역사는 그렇게 짧지 않다. 최근 몇년 사이 벌어진 주식투자 광풍이 불기 이전부터 조금씩 시작했다. 투자를 시작한 건 모두의 시작과 비슷하다. 쥐꼬리만큼조차도 오르지 않는 월급을 보며 이대로 월급만 모았다가는 나에게 노년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노후는 내가 책임지고 있지만 혼자인 나는 누가 보살펴주나.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답이 나오는데 막막했다. 부업을 찾아봐야 하나. 아니 지금 본업도 힘들어서 퇴근하면 쓰러질 지경인데 부업은 무리였다. 월급 외에 다른 수익이 생기는 창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건 당연하게도 재테크였다.

적금부터 시작했다. 2013년쯤 재형저축이 부활하면서 이 상품에 가입했는데 제로 금리에 가까운 은행 적금 상품 중에서 재형저축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장기 가입이라는 게 단점이었지만 최대 한도로 가입했다. 하지만 수년 걸려 마련되는 이 목돈으로 노년의 두려움을 떨치기에는 부족했다.

그때 떠올린 게 주식이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업무로 친해진 사람이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모 화장품 종목의 수익률을 보여줬다. 그 당시 한국 화장품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그 종목의 위대함을 역설하던 그에게 “밥이나 드세요”라고 했다. 돌아온 말은 “안 먹어도 배부릅니다”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까지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즐거워하게 만들었나 궁금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수년 전 에스(S) 모 주식을 조금씩 샀다. 그걸 산 이유는 모두가 그걸 산 이유와 같았다. 이 종목이 망하면 한국 경제가 망하는 거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샀다. 그 후 여러 종목을 샀고 쏠쏠하게 들어오는 배당금에 ‘내가 이 돈을 그대로 은행에 모아뒀다면 고작 100원을 벌었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주식투자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식으로 큰돈을 번 건 아니다. 소소하게 용돈벌이 삼아 했을 뿐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크게 지르지 못했기 때문인데, 지금 주식계좌를 보면 그런 내 성격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투자금은 그렇게 조금씩 불었다.

내가 이런 주식투자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가는 왜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 같은 걸 하느냐고 눈치 없는 소리를 한다. 다른 누군가는 목 좋은 곳에 오피스텔이나 사두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나라고 부동산 공화국에서 왜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건 이미 최소한의 종잣돈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혹은 부모님을 잘 만나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해당되는 슬픈 현실이다. 그들과 나는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아무리 종잣돈을 모아도 내 집 마련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 같다.

쥐꼬리만큼도 안 오르는 월급에 

노후 살길 찾으려 시작한 주식

연초부터 뒤덮인 시퍼런 색 보며

‘존버는 승리’ 믿을까? 울고 싶다



지난달 28일 오전 장중 2600선이 붕괴된 코스피 지수.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나이 먹어 초라해지지 않으려고



모으고 불리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소비였다. 사실 백날 모아봤자 쓰면 끝이다. 그래서 가계부를 쓴 지 수년째다. 다행이라면 정말 다행으로 옷을 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의복비와 외식비는 별로 지출이 많지 않았다. 커피도 사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아 테이크아웃 커피의 함정도 없었고 걷는 걸 좋아해 택시비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은 바로 술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맥주 한캔(두캔이 될 때도 있다)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와인 한잔도. 편의점 캔맥주 구입비만은 줄이지 않기로 했다. 이것마저 끊는다면 이렇게 돈을 모아 노후를 준비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챙겨야 할 후배들도 많아졌고 경조사도 많아졌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품위유지비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처럼 모으고 불리고 있지만 어디까지 모아야 안심이 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한숨 쉬시는 부모님을 보면 30년 후의 내 모습인 듯해 불안해진다. 역시 다다익선이라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물론 여유가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건 사실이지만 내일의 여유를 위해 오늘을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마음만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보니, 새해 목표가 ‘돈 모으기’라고 밝히며 과거 욜로로 살았던 자신이 후회된다는 글이 여럿 있다. 40대가 30대에게 해주는 조언, 30대가 20대에게 해주는 조언 같은 글을 보면 적당히 즐기되 어떻게든 돈을 모아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적당히 즐기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오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되 좀 더 나이를 먹어서 내가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모아야겠다.

그러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주식계좌를 보고 욕이 또 나온다. 언제쯤 회복될지 감도 안 잡힌다. ‘존버는 승리한다’만 믿고 가야 하나. 울고 싶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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