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직 되려고 돈 뿌렸다···'중통령 선거'가 대체 뭐기에
오는 28일 실시되는 제26대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중앙회) 회장 선거전이 한창이다. 연 매출만 수천억 원씩인 탄탄한 중소기업 대표 5명이 후보자로 나섰다. 360만 중소기업인을 대변하는 이른바 ‘중통령(중소기업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올해 특히 혼탁과열 양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20일 서울에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9일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 이후 대구와 전주에 이어 세 번째다. 업종별 단체장 300여 명과 각 후보 측 직원들로 토론회장인 서울 중기중앙회 그랜드홀은 이른 시간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후보들은 행사 시작 40분 전부터 로비에 서서 각 단체장과 악수를 나눴다. 행사를 시작한다는 공지가 수차례 반복됐지만 한 명의 손이라도 더 잡으려는 후보들은 10시가 다 돼서야 행사장 안에 들어섰다.
이번 선거의 후보는 이재한(56) 한용산업 대표, 김기문(64) 제이에스티나 회장, 주대철(64) 세진텔레시스 대표, 이재광(60) 광명전기 대표, 원재희(63) 프럼파스트 대표(이상 기호순) 등이다. 김기문 후보는 23대, 24대 회장을 지냈다. 다른 후보들도 모두 부회장을 지내냈다. 이재광 후보는 지난 25대 선거에도 출마했다. 수년간 차기 회장 구인난에 시달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는 사뭇 다르다.
중기중앙회장이 어떤 자리길래, 후보자 기탁금만 2억원에 달하고, 중도 사퇴하면 돌려받지도 못하는데, 후보자가 줄을 선 것일까. 중기중앙회장은 흔히 ‘무보수 명예직’으로 불린다. 공식적인 급여가 없어서다. 하지만 대외활동수당으로 1년에 약 1억2000만원을 받는다. 중기중앙회는 홈앤쇼핑의 최대주주(32.93%)다. 중기중앙회장은 홈앤쇼핑 이사회 의장을 겸한다. 그래서 월 500만원씩 연간 6000만원의 보수를 챙긴다. 또 대형 세단 차량(현재 에쿠스 리무진 4000CC급)을 이용할 수 있다. 별도의 비서진과 중앙회 내 사무실도 있다.
경제적인 측면 외에 이점도 많다. 대통령,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각종 경제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부총리급 의전을 받는다. 대통령 해외 순방도 동행한다. 경제단체협의회 등 17개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다. 25명의 중기중앙회 부회장 임명권과 산하 회원단체 613개의 감사권도 갖는다. 지난해 중기중앙회의 예산 규모는 3조 7822억원. 주목받는 자리다 보니 정치권 진출도 용이하다. 역대 회장 11명 중 6명(6~11대 김봉재, 12~14대 유기정, 16대 황승민, 17대 박상규, 18~19대 박상희, 22대 김용구)이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았다.
현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점도 중기중앙회 회장의 위상을 높인다. 청와대는 올해 정부 부처 합동 신년인사회를 역대 처음으로 중기중앙회 회관에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총수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지난해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중기중앙회 회장이 특별수행원에 포함돼 방북하기도 했다.
선거전은 과열을 넘어 혼탁 조짐이다. 선거를 위탁 관리 중인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를 8일 앞둔 20일까지 불법행위 4건을 적발해 2건은 검찰에 고발하고 2건은 경고 조치했다. 지난 14일 선관위는 기사 청탁을 빌미로 기자에게 현금 50만원과 시계를 제공한 혐의로 한 후보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기순 중기중앙회장 선거관리위원장은 “네거티브, 금전 선거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중기중앙회 위상에 맞춰 선거가 정책 발굴의 장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업계를 전반적으로 키울 수 있는 인물을 뽑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