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감시능력 과소평가…숨겨온 '제3의 핵시설' 들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플러스 알파’인 우라늄 농축 시설은 북한의 핵능력 중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을 만들어야 하는 플루토늄 방식은 정찰위성에 포착되기 쉽다.
반면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을 만드는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시설은 600㎡(180여평) 크기에 불과하며, 소형 디젤 발전기 1~2대면 시설을 가동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의 감시를 피해 북한이 영변 외의 지역에서 원심분리기를 가동, HEU를 생산할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각자 숙소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량 ‘비스트’(왼쪽 사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차량이 28일 각각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을 나서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하노이=EPA·AP연합뉴스 |
북한은 원심분리기 시설을 통해 영변의 5㎿e 원자로와 별도로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을 축적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은 50여㎏ 수준이다. 핵무기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은 6㎏으로, 핵무기 7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HEU로 핵무기 1개를 제조하는 데는 15~20㎏의 HEU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750~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연결해 1년 동안 가동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 주장대로라면 매년 2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HEU를 생산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변 이외의 지역에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 능력은 북·미 회담으로 인한 비핵화를 거쳐도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싱크탱크와 언론 등에서는 북한이 제3의 장소에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의심해왔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확대 정상회담을 마친 후 전용차를 타고 회담장인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을 떠나고 있다. 하노이 AFP=연합뉴스 |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6월 북한이 핵무기 관련 시설 은폐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주장과 달리 우라늄 농축 시설이 영변 외에 강성(Kangsong)에도 있으며, 미 정보 당국은 2010년 강성으로 알려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강성은 수천개의 원심분리기를 운용하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영변 외의 핵시설에 대한 검증과 폐기가 없다면 북한의 미래 핵물질 생산을 차단할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으로 볼 때, 영변과 강성 외에도 미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으나 북한이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설을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지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가역적 수준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으로서는 제3의 핵시설과 핵탄두 보관 시설, 탄도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북한의 신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오후 하노이 메리어트 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제 2차 북미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감시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이미 북한 내 핵시설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으며, 북한이 공개할 핵시설 목록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의를 탐색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향후 북한이 영변 외 제3의 지역에 있는 핵시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을 경우 북·미 간 신뢰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달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해 10월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