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 없던 박지현이 손을 덜덜 떤 이유
"여의도의 시계가 참 느립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적 실익을 따지지 않고, 여야를 따지지 않고 나아갈 부분은 빨리 나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 이예람 중사 특별법'이 지연됐을 때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14일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만난 박 위원장은 '쓴소리꾼'이 된 자신의 상황을 놓고 "그런 역할이 아니라면 저 말고 경력이 더 높으신 분이 제 자리에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일 하라고 저를 이 자리에 앉혔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그동안 어디서든 발언하며 떤 적이 없었다"는 박 위원장도 지난 12일 의원총회에서 검찰개혁 관련 발언을 할 땐 원고가 적힌 휴대전화를 쥔 채 "손을 덜덜 떨었다"고 한다. 당시 박 위원장은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검수완박을 질서 있게 철수하고 민생법안에 집중하는 길이다. 다른 길은 검찰개혁을 강행하는 길"이라며 "소수의견"을 냈다.
박 위원장은 그때를 떠올리며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컸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께서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면서까지 강조한 것이고 저를 포함한 당의 모든 사람도 수사권 정상화에 동의하고 있다"라며 "다만 우리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방선거 관련 질문에 박 위원장의 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그는 "우린 검찰개혁이란 이슈만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라며 "개혁과 민생 모두 꼼꼼히 챙겨 지방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장 후보자의 공천 방향을 두곤 "이겨야 한다, 그것뿐"이라고 말했고, 승리를 위한 길에 대해선 "뻔한 그림이 아닌 다양한 그림을 국민들께 보여드려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박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도 여느 정치인들과 달리 '한 문장' 답을 내놨다.
"제 발언과 행동을 보실 때 여성, 20대, 정치초보의 잣대를 거둬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박지현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윤석열·안철수, 선거 때 약속 모른 척"
▲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
ⓒ 이희훈 |
- 정치교체를 위해 가장 당면한 과제가 중대선거구제를 위한 '기초의원 2인 선거구 폐지법'이었습니다.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정치개혁을 강하게 내세웠었고 대선 직후에도 민주당 내에서도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완전히 달성하진 못한 상황입니다.
"당초 6개 시범지역을 영·호남 포함 11개로 확대했고 쟁점이었던 '4인 선거구 분할 가능' 조문의 삭제도 관철시켰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 정도까지 나아갔다는 것에 어느 정도 안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국회 본청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계십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2인 선거구를 폐지해 중대선거구제를 정착시키는 건 결국 다양성 보장을 위해 국회가 진즉 나섰어야 하는 일입니다.
양당 독점 체제가 이렇게까지 왔는데 여전히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분명 윤석열 당선인이나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선거 때부터 계속 이야기해왔던 사안입니다. 당선 후 모른 척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관철이 됐으니 첫발을 뗐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진일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12일 의원총회에선 검찰개혁 법안이 당론으로 채택됐습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선택이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찰개혁은 너무나 필요한 일입니다. 당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께서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면서까지 강조한 것이고, 저를 포함한 당의 모든 사람도 수사권 정상화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강행했을 때 빚어지는 우려에 대해 저를 비롯해 권지웅·김태진 비대위원도 이야기한 것입니다. 소위 '검수완박'에서 끝나면 안 되는데 우리가 너무 매몰돼 있지 않나 우려한 것입니다. 우린 검찰개혁이란 이슈만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습니다. 유권자분들께선 검찰개혁 외에도 코로나19 극복,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등 당장의 삶에 와닿는 이야기를 필요로 합니다.
제가 그동안 어디서든 발언하며 떤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의원총회에서 그 발언을 하려는데 너무 떨렸습니다. 원고가 담긴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는데 그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에 대해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컸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개혁과 민생 모두 꼼꼼히 챙겨 지방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지방선거 땐 특히 무상급식이나 기본소득 같은 현장 밀착형 공약이 이슈가 됐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있습니까.
"이재명 후보의 소확행 공약 중 좋은 공약이 많았습니다. 그것들 중 지방선거에서 무엇을 공통공약으로 삼을지 개발 중입니다. 민주연구원에서도 열심히 토론 중에 있습니다."
"어깨 무겁지만 '고맙다'는 의원들 전화에 생각 다잡아"
▲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
ⓒ 이희훈 |
- 비대위 회의나 간담회 자리에서 당에 쓴소리를 하며 "이게 제 역할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당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면 당 안엔 몇십 년 동안 힘들게 동고동락한 분들이 많습니다. 누군가 '이 사람 문제가 있으니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면 주저하시는 분들이 있는 거죠. 저는 그럴 때마다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일 하라고 저를 이 자리에 앉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역할이 아니라면 저 말고 경력이 더 높으신 분이 제 자리에 있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깨도 무겁습니다만 의원분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전화를 해오시면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다잡습니다."
- 서울 등을 언급하며 지금 후보자로는 부족하다는 발언을 이어왔고, 결국 서울이 '전략선거구'가 됐습니다. 지방선거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지역이 서울인데 어떻게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전략선거구는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분들이 도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반전과 혁신, 도전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에 당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승리를 위해 당이 다 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공천의 방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겨야 한다, 그것뿐입니다."
- 당 일각엔 '서울에서 이길 수 있을까' 비관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패배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지도부의 역할입니다. '질 거 같으면 안 할거냐, 이긴다 생각하고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전략선거구가 전략공천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전략선거구가 된 것만으로도 현재 출마한 분들은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로베이스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를지 치열하게 논의 중입니다. 정해진 게 없다 보니 출마자분들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합당한 경쟁을 통해 누가 적합한지 가리는 과정을 함께 거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신과 파격, 살점 도려내는 결단 필요"
▲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
ⓒ 이희훈 |
-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힘은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참신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우선입니다. 민주당은 계속해서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뻔한 그림이 아닌 다양한 그림을 국민들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분들에 대해 살점을 도려내는 큰 결단도 필요할 것입니다. 선거에서의 승패를 떠나 민주당이 그동안 한 약속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것이 바로 민주당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무산됐을 때 눈물을 흘렸는데 당시 어떤 감정이었습니까.
"여의도의 시계가 참 느립니다. 빨리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여의도는 그에 비해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정치적 실익을 따지지 않고, 여야를 따지지 않고 나아갈 부분은 빨리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 중사 특검법 사례를 보며) 그렇지 않은 모습에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중사가 저보다 두 살 어리십니다. 발언을 하려는데 이 중사 아버님의 심정이 어떨지 너무도 와닿았습니다. 일부에선 '연기를 한다'고 그러는데 제가 신경 쓸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 중사 아버님을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동안 만난 정치인들 중 가장 위안이 됐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민주당 비대위원장 자리에 있으면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용기를 줄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게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구나'라는 걸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 마지막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 발언과 행동을 보실 때 여성, 20대, 정치초보의 잣대를 거둬주시면 좋겠습니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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