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벗기면 된다?···사전 동의 없는 베드신은 예술 아닌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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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벗기면 된다?···사전 동의 없는 베드신은 예술 아닌 성폭력

보헤미안 0 304 0 0
계약서에 없는 부당한 요구로 고통받아온 공연·영화계 여성 노동자들[경향신문]

2017년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감정이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는 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라며 영화계의 자정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
주연 한소희의 베드신 논란
사전 고지 없는 노출 강요는
2015년 반민정의 폭로 등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신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조건과 업무를 파악한 후 계약했다. 성실하게 일하는 와중에 갑자기 상대방이 계약 사항에 없던 일을 요구한다. 유리창을 닦기로 했는데 겸사겸사 바닥까지 닦아달라고만 해도 욕 나온다. 그런데 아예 다른 일이고, 노출이나 신체 접촉 같은 민감한 사안이 포함된다면? 그것도 당일 통보로! 멋지게 노동청에 신고 넣고 때려치우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전개는 그렇게 ‘기승전사이다’가 아니다. 내가 안 하면 일이 복잡해지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유난 떠는 꼴이 된다. 그만두겠다고 하면 그간의 모든 작업물이 물거품이 되면서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 중에 하나만 골라, YES OR YES! 협의한 영역 바깥의 노동과 권한을 갑자기 요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당사자가 통제권을 쥘 수 없는 영상으로 남기는 것은 엄연한 인권침해이자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여성 배우들에게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

<마이 네임>은 지난 10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한소희가 주연을 맡았다. 얼마 전 극중 베드신이 사전 고지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작품 전체의 흐름을 놓고도 베드신이 뜬금없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보는 우리보다 찍는 배우가 더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갑자기요? 지금요? 사전 고지 없는 베드신이나 노출 강행은 <마이 네임>만의 문제점이 아니다. 예술계에서 오랫동안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불가피한 시도인 척 은폐했던 성폭력 유형이다. 동의 없는 성적 접촉과 행위가 성폭력이다. 동의 없는 성적 발화와 행위가 성희롱이다. 그렇다면 사전 고지 없이 요구하는 노출이나 베드신 또한 성폭력이다. 2017년 여성문화예술연합을 비롯해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 ‘찍는 페미’가 성폭력을 연기로 판단하여 1심에서 무죄를 판결한 재판부에 항의하며 연 기자회견의 이름은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이다. “안 한다고 하면 되잖아?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찍은 거잖아?”라고 말하고 싶다면, 왜 당신은 수많은 부당한 요구에 당당하게 “싫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떠밀려 한 선택이 진짜 동의인지부터 돌아볼 것.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꼽아보자. 2012년, 배우 박시연은 영화 <간기남>에서 사전 고지 없는 노출 연기로 고통받았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노출 수위를 알았으면 고사했을 것이며 이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배우 문소리는 2014년 7월 SBS <매직 아이>에 출연, 10년 전 겪은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촬영 날 아침 현장에 도착하니 대본에서는 없었던 과한 노출 장면이 있었다고. 배우 이영진 역시 2017년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에서 사전 협의 없이 전라 노출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현장’은 평등하지 않다
위계가 작동하는 공간에서
어떤 여배우가 NO 할 수 있나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는 와중에 사망한 김기덕 감독 또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베드신이나 노출을 강요했다. 김기덕은 대놓고 폭행까지 저질렀지만, 소리 지르거나 물리적인 폭행이 있어야만 강요가 아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회식 자리에서는 신입이 나서서 집게를 잡고, 머리에 총을 갖다 대고 웃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상사가 농담하면 알아서 자지러진다. 역할 기대, 상황, 모두의 사정, 일의 진행 상황… 분위기와 상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악력은 애덤 스미스의 것만큼 강하지 않을까? 여성 배우가 처한 상황을 상상해본다. 카메라는 수십 대 세팅되어 있고 모두가 나를 위해 움직인다. 내가 YES라고 말하기만을 기다리면서. ‘현장’은 평등하지 않다. 개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내기 어려운, 위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관행은 근본적으로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구 취급하는 여성혐오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일단 계약’만 하면 그 몸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하는 만큼 요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인 것이다. 2015년 조덕제의 촬영 중 성추행을 고발, 2018년 유죄 판결을 끌어낸 배우 반민정의 기자회견 내용은 촬영 현장에서의 성폭력이 벌어지는 구조를 폭로한다. “촬영 현장에서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던 노출 연기가 강요되는 상황을 겪었다. 법정에 제출된 영화 제작사 대표의 녹취록에서 ‘현장에서 벗기면 된다’라는 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 노출 여부를 검토해 계약서를 쓰고, 연기 경력이 오래된 주연배우였던 저도 ‘현장’에선 제 의사나 계약 내용과는 상관없이 노출을 강요받았다.” 피해를 고발할 수조차 없었던 수많은 공연, 영화 예술계 여성 노동자들을 생각한다. 부당한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라져야 했을 재능을 생각한다. 동의와 사전 고지 없는 현장에서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들을 생각한다.

협업하는 동료에게 원하는 것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결국 동의를 얻어낼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설득력 있는 장면이 아님을 알지만 강행하겠다고 자백하는 행위이다. “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과 충분히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선택권이 없는 상태로 상대를 몰아넣고 강요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의미를 공유하는 언어 체계에서, 그런 사람은 ‘양아치’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예술가가 아니라. 양아치 짓을 하면서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그런 건 없다. 어쩌라고, 나도 액상과당 많이 먹으면서 근육왕이 되고 싶거든요. 예술가가 되는 방법은 예술을 하는 것뿐이고, 동의 없는 노출이나 베드신 강요는 예술이 아니다.

종종 ‘날것’과 어떤 ‘진정성’에 대한 집착이, 동의 없는 촬영을 강행하는 원인일 때도 있다. 배우 윤여정은 영화 <화녀>(1971) 촬영 당시, 옷을 벗고 누워 있는데 몸 위로 쥐 떼가 쏟아져 혼비백산했다. 사전 고지 없는 장면이었고 명백한 학대지만 이 장면은 그대로 영화가 되었다. 심지어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하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찍었으니, 예술보다는 차라리 스너프 필름에 가깝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는 마지막 키스신을 감독과 남자 배우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찍었다.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느낌’이 안 살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다. 참 이상하다. 그 느낌을 살리는 것이 연기 아닌가? 예술에서 ‘진정성’과 ‘날것’은 합의된 연출보다 더 숭고하고 과감하며 대단한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예술은 창작물이다. 허구다. 그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고자 많은 자본이 투여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연기를 하고, 조명을 들고, 소품을 만들고, 특수분장을 한다. 그러니 이렇게 픽션을 창조하는 현장에서 날것의 ‘진짜’를 포착하려는 모든 시도는 기만적이다. 현장의 약속과 세계관을 깨뜨리는 짓이다. 연기와 진정성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배우가 캐릭터가 처한 상황대로 식음을 전폐하자, 동료 배우가 “굶지 말고 연기를 해”라고 조언했다고. 의외성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끌어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연기를 업으로 하는 배우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이자 스스로 역량 부족을 고백하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영상 예술의 본질 자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몰카’ 문화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해롭지 않은 범위에서 기분 좋게 놀라게 해주는 ‘깜짝 카메라’ 정도면 모를까, 당혹스러운 상황을 조장하고 상대의 반응을 재미로 소비하는 것 또한 타인을 도구화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타인을 몰아넣고 그 감정이나 반응을 소비할 자격은 없다. 그 목적이 예술이든 웃음이든 감동이든, 형태가 영화든 ‘실험 카메라’든.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우리는 누구나 안전한 장소에서 평등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길 원한다. 하기로 한 일을 하고, 협의한 적 없는 일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 어느 정도의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멋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채 기어이 뭔가를 만들고 싶다면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범죄 현장을 촬영한 증거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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