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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전과 이후로 바뀐 미국…아픔과 시련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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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20년]➃9·11 테러로 인해 삶 변화…미국인 80% "미국 변화"
공항 보안 및 이민 정책 강화…미국내 무슬림의 힘겨운 삶도

9.11 테러 당시 뉴욕의 세계무센터의 모습. © AFP=뉴스1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2977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격적인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20주년이 됐다.

미국 사회와 언론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허리케인 아이다의 피해로 인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9·11 테러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9·11 테러는 지난 20년간 미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던 만큼 미국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9·11 테러 20주년 기획 기사에서 "섬터 요새(미국의 남북전쟁이 시작된 곳)와 진주만처럼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9·11 테러는 역사 자체를 가르는 사건들이었고, 미국의 연대표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존재하는 '이전'과 '이후'로 새겼다"며 "9월12일 미국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다만, 9·11 테러는 누구에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누구에겐 테러에 대한 공포와 분노로 남았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미국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WP는 "20년 동안 9·11 테러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다가올 일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운명은 뒤집히고, 재편성되고, 다시 그려졌다"고 적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펜실베이니아 샹크스빌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기의 추모비 모습.© AFP=뉴스1



8일(현지시간) 미 언론들에 따르면, 9·11 테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아픈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킴벌리 렉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절대 잊지 말라 9·11(Never Forget 9·11)'이라고 말하는데, 절대 잊지 마세요"라며 "끔찍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세요. 그들을 구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세요. 그들을 항상 생각하고 절대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뉴욕 소방관이었던 레이먼드 파이퍼는 오랜 기간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당시 자신이 골프를 치러 가기 위해 동료였던 스티븐 메르카도와 근무를 바꿨는데, 9·11 테러 발생으로 현장에 출동한 메르카도가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타워가 붕괴되면서 그 안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1시간 이상 후에 현장에 도착한 파이퍼는 9개월 동안 피해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색 작업을 했다. 소방관 커뮤니티 행사에서 매번 사회를 볼 정도로 사교적이었던 파이퍼는 이후 내성적으로 변했고, 성미도 급해졌다. 메르카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WP는 “파이퍼는 세계무역센터 잔해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파이퍼는 몇 년 후 자신이 신장암 4단계라는 사실을 알고 되살아났다. 당시 수색 작업 도중 독소에 노출된 게 신장암의 원인이라고 판명되자 그의 죄책감이 덜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의 붕괴로 희생된 그의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운명도 9월11일에 결정됐던 것이었다.

CNN에 따르면,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참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플로리다주 초등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당시 대통령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데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한 학생은 "(9·11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고, 또 다른 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에 있는 대학을 갔다. 뉴욕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월11일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참관 수업을 하던 도중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으로부터 소식을 접하고 있는 모습. © AFP=뉴스1



미국인 대다수는 9·11 테러 이후 완전히 삶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가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실시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8명 이상이 9·11 테러가 지속적으로 미국을 변화시켰다고 응답했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가 서포크대와 함께 지난달 1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60%가 '9·11로 미국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답은 38%였다. 9·11 이듬해인 2002년에는 삶이 변했다는 응답이 54%, 아니라는 답이 45%로 9%포인트(p) 격차였는데, 2011년엔 17%p로 벌어진 데 이어 올해엔 22%p까지 격차가 커졌다.

다만, 변화의 방향에 대해선 긍정보단 부정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WP-ABC 조사에선 거의 절반 가까운 46%가 9·11 테러가 나라를 더 나쁘게 변화시켰다고 응답했고, 33%만이 나라를 더 좋게 바꿨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인들이 9·11 테러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10년 전과는 다른 결과(좋게 변화 39%, 나쁘게 변화 42%)이며, 테러 직후였던 2002년(좋게 변화 55%, 나쁘게 변화 27%)과 비교하면 매우 큰 변동이라고 WP는 전했다.

뉴욕 JFK공항에서 추수감사절 휴가를 맞아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9·11 테러 이후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은 공항이다. CNN에 따르면, 9·11 테러 이전 미국 공항에선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20분 전에 공항에 차를 세우고 탑승 게이트로 곧장 걸어들어 갈 수 있었다. 함께 온 동료가 같이 보안요원을 지나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ID)가 없어도 탑승이 가능했다. 칼날과 액체도 휴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 당시 테러리스트들 중 일부가 적절한 신원확인 없이 비행기에 탑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보안정책이 대폭 강화됐다. 미국은 새로운 보안법이 도입됐고, 공항 보안을 전담하는 교통안전국(TSA)이 창설됐다. 이듬해엔 위험인물 유입 차단 등을 담당하는 국토안보부가 신설됐다.

이를 토대로 18세 이상의 모든 승객들은 국내선 항공편에서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선 정부가 발급한 유효한 신분증이 필요해졌다. 미국 정부는 테러 감시를 위해 '비행금지 리스트'를 개발했고, 이는 전 세계로 확대 적용됐다.

테러리스트 중 일부가 박스 절단기와 작은 칼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승객들은 더 이상 칼날이나 가위, 뜨개질바늘과 같은 잠재적인 무기들을 휴대할 수 없게 됐다. 무기나 폭발물을 탐지하기 위한 공항 직원들에 대한 훈련도 강화됐다.

이로 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공항에선 보안 검색을 위해 탑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게 됐다. 한 역사학자는 “3억2500만명의 미국인들이 오늘날 공항을 통과하는 방식은 9월12일에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광장에서 수백명의 고등학생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슬림 7개국 국민을 겨냥한 반 이민 행정명령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같은 미국의 변화는 미국내 무슬림들에게는 힘겨운 시간으로 다가왔다. 미국 주류 사회가 테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미국내 무슬림들조차 테러와 연관성을 의심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들을 모욕하거나 폭력까지 행사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랍계 미국인인 딘 오베이달라는 CNN에 "9·11 테러 이전 저는 '백인 딘'이었지만, 테러 이후 '소수인 딘'이 됐다"며 “이는 저만 겪은 경험이 아니다. 저와 같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많은 아랍계 미국인들도 같은 변화를 겪었다"고 밝혔다. 오베이달라는 지난 2006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2001년 9월10일, 저는 백인 남자로 잠들었고, 9월11일엔 아랍인으로 깨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오베이달라는 "그 날 이후, 우리는 단지 소수 공동체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단지 9·11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민족적 배경과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많은 미국인들에 의해 악마화되고 증오받는 집단으로 비쳐졌다"고 말했다.

'인종의 용광로'로 통했던 미국의 이민 정책은 9·11 테러 이후 더욱 보수화됐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이민에 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또한 정보당국의 감시 활동도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대폭 확대됐지만,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태로 정보당국의 부적절한 활동에 대한 비판론도 함께 커졌다.

9·11 테러는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WP에 따르면, 테러 이후 TV 프로그램은 ‘안티히어로(전통적 영웅답지 않은 주인공)’ 시대로 접어들었고, 할리우드는 ‘캐리비안 해적’, ‘아이언맨’과 같은 현실 도피적인 분위기의 영화나, 역사와 지정학적으로 진지한 영화가 많이 제작됐다. 주요 스포츠 행사에선 통합과 치유를 위한 애국적인 이벤트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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