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폭력적이 된 이유
종교가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현대인들에게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최근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테러리즘을 비롯, 십자군 전쟁, 16~17세기 종교전쟁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과연 종교는 폭력적이고 호전적인가?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신의 전쟁’(교양인)에서 그런 생각에 맹점이 있음을 지적하며, 인류문명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찬찬히 살펴나간다.
수렵 채집인 시절, 인간은 동물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물을 위한 희생제를 치렀다. 이런 제의는 고대사회에서 일종의 의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잉여 농산물의 축적이 가능해진 농경사회에서 더 많은 땅을 뺏기 위한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살해와 재산 탈취를 정당화하고 전투력을 고양시키는 종교의식이 중요해진다. 종교가 죄의식을 덜어주며 정치에 봉사하게 된 것이다.
종교성에 대한 저자의 흥미로운 관점은 인간의 진화와 함께 발달한 변연계에 대한 설명이다. 공격과 폭력, 생명과 번식이라는 파충류의 구뇌에 이어 포유류의 연민과 감성의 영역인 변연계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딜레마를 겪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이는 인간의 조건이 종교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암스트롱은 인간사회가 원시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 폭력이라고 말한다. 농경문화는 지배계급의 폭력 구조를 만들었으며, 주민 대다수는 꼼짝없이 폭력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잔인한 구조가 인간의 진보를 가능케한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런 파괴적인 억압에서 종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암스트롱은 문명의 딜레마 속에서 공동체적 윤리를 강조하는 데서 위대한 종교 전통이 탄생했음을 상기시킨다. 기원전 5세기말 붓다는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비로운 비폭력의 정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게 붓다의 가르침이었다. 춘추시대 공자 역시 제후들의 난립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보며, 인을 설파했다. 인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바라지 않는”, 개인의 윤리이면서 동시에 통치원리이기도 했다. 성경과 쿠란 모두 가난한 이웃을 못 본 체 하는 것은 불의라고 강조, 공감과 연민을 강조했다.
종교의 폭력성을 탐색하는 책은 종교전쟁 혹은 종교의 폭력적 참상들이 종교자체보다 정치적 투쟁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11세기 초부터 3세기에 걸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동방의 기독교인을 무슬림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자는 명분과 달리 세를 넓히던 왕과 제후를 견제하고 교회 권력을 동방으로 확장하는 속셈에서 비롯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16~17세기 종교 전쟁 역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프로테스탄트 제후와 가톨릭 왕들 사이에 벌어진 봉건사회에서 자신의 영토와 권력을 지키려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시장 경제가 발달, 낡은 농경구조가 무너지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종교는 국가와 분리되기 시작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예전 생활방식에 맞추어진 낡은 제의, 로마 교회를 떠나 홀로 하느님 앞에 서는 종교의 자유·개인화를 이끌었다.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대두된 민족주의는 사적 영역으로 물러난 종교의 자리를 꿰차면서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개인의 영역으로 추방당했던 종교는 20세 종교적 근본주의와 함께 돌아온다. 암스트롱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독교 근본주의보다 더 공격적으로 표출된 이유는 호전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무슬림이 겪은 폭력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종교가 국가의 폭력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며,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공동체를 향한 공감과 연민, 배려다.
암스트롱이 큰 걸음으로 살핀 종교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해온 종교의 역할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여준다.
신의 전쟁/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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