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서 150년전 대형화장실 유적 발견…"현대식 정화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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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서 150년전 대형화장실 유적 발견…"현대식 정화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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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0.4m·1.4m 석조 구덩이 확인…기생충 알·씨앗도 나와
물 흘려보내는 구조…"관리·궁녀 등 최대 10명 공동 이용 추정"


경복궁 내 정화시설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8일 오전 서울 경복궁 동궁 권역 남쪽 대형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1.7.8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약 15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遺構, 건물의 자취)가 나오기는 처음으로, 당시로서는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발굴조사를 통해 근정전 동편의 왕세자 생활 공간인 동궁 권역 남쪽에서 찾은 길이 10.4m, 너비 1.4m, 높이 1.61.8m인 네모꼴 석조 구덩이 형태의 화장실 유적을 8일 공개했다.

경복궁 배치도
주황색으로 칠해진 곳에서 화장실 유적이 나왔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는 18881890년에 전각 위치를 그린 '경복궁배치도', 1904년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궁궐지'(宮闕志) 등 문헌과 토양에서 나온 기생충 알, 오이·가지·들깨 씨앗을 근거로 석조 유적을 화장실이라고 결론지었다.

궁궐지를 보면 "통장청 동쪽에는 문기수청이 있는데, 10칸이며 화장실은 4칸이다. 지금(1904년께)은 없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기수직소'로도 불린 문기수청 동쪽에 화장실 유적이 위치한다. 경복궁배치도에서 문기수청 동쪽의 용도를 알 수 없는 5칸 건물도 화장실 유적으로 판단된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토양에서 회충과 편충 같은 기생충 알은 g당 1만8천200건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부여 쌍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 양주 회암사지 화장실 유구의 토양에서 나온 기생충 양보다 많은 수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종(재위 18631907)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와 목탄·소뼈의 연대 측정 결과를 토대로 화장실을 1868년 만들어 약 20년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궁 권역은 1868년 완공됐으며, 화장실 유적이 있던 자리에 1891년 계조당이 들어섰다.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장을 지으면서 동궁 권역을 훼손했다.

경복궁 동궁 권역 화장실 유적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복궁 화장실 유적의 특징은 바닥과 벽면을 모두 돌로 마감하고 모서리는 진흙을 발라 분뇨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했으며, 미생물을 이용하는 현대식 정화조와 유사한 정화 체계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구덩이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설치됐는데, 북쪽 입수구 높이는 0.5m이고 출수구 높이는 1.3m이다. 남아 있는 출수구 유구 길이는 18m이다.

길이 10m가 넘는 대형 화장실 유구는 익산 왕궁리 유적과 양주 회암사지에서도 나온 바 있지만, 경복궁 화장실처럼 입수구와 출수구를 완비하지는 않았다.

오동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화장실에 있는 분변이 물과 섞이면 발효 속도가 빨라지고 부피가 큰 찌꺼기만 바닥에 가라앉는다"며 "분변에서 분리된 오수는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체계는 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분뇨 발효와 침전, 오수와 정화수 배출 순으로 이뤄지는 현대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며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적고 독소가 빠져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연구사는 다만 입수구 쪽 유구가 훼손돼 화장실 유적에 물이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복궁 동궁 화장실 유적 추정 복원 모습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다면 당시 화장실은 어떤 모습이고, 누가 이용했을까.

연구소는 화장실 유적 바로 위에 기와지붕을 올린 건물이 있었고, 경복궁 건물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하는 한 칸이 약 2.45m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가 4∼5칸으로 나뉘었을 확률이 높다고 추정했다. 전통 화장실에서는 보통 한 칸을 또다시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기 때문에 최대 10명이 동시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석조 구덩이의 용적량 16.22㎥를 사람의 평균 분뇨 생산량과 비교하면 매일 150여 명이 약 1년간 드나들며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봤다. 만일 화장실에 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이용자 수는 20% 수준인 30여 명에 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 연구사는 "경복궁 화장실은 상주 인원이 많은 곳에 밀집돼 있었으며,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闕內各司)를 비롯해 동궁 권역과 오늘날 국립민속박물관 부지에 많았던 듯하다"며 "이번에 발견된 화장실 유적은 하급 관리와 궁녀, 궁을 지키는 군인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은 "물을 이용한 정화시설을 갖춘 150년 전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 유적은 외국과 비교해도 유례가 없다"며 "동양과 서양의 정화조 체계는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식 정화시설을 갖춘 최고(最古)의 화장실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복궁서 정화기능 갖춘 150년 전 공중화장실 유적 나왔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8일 오전 서울 경복궁 동궁 권역 남쪽 대형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1.7.8 ryousant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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