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만원 낮춰도 안 나가"…속타는 은마아파트 집주인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지난해 8월 이후 1년4개월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작년 7월 말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새 임대차법 시행 후 이어진 전세난으로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대출이 막힌 영향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전세 대목인데도 대치동과 목동에선 전세 매물이 쌓이고 있다.
13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1502건으로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 13일(3만1874건) 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가장 적었던 9243건(10월 12일)에 비해 3.5배가량으로 늘었다.
임대차보호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7월 4만 건 안팎이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두 달 뒤 1만 건 이하로 급감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2만 건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달부터 다시 3만 건을 넘겼다.
이날 기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전세 매물은 409건으로, 1년 전(14건)에 비해 30배 가까이 늘었다. 매물 증가는 가격이 너무 뛴 데다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서다. 은마 전용면적 84㎡의 전세보증금은 지난해 7월 5억8000만~7억원 선이던 것이 작년 11월 12억2000만원으로 두 배가량으로 상승했다.
보증금 마련이 쉽지 않은데, 금융당국은 올 7월부터 금융권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대폭 강화했다. 한시적으로 올 4분기 전세대출을 총량관리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대출받기가 쉽지 않다. 내년부터는 전세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된다.
이달 첫째주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99.1로 약 2년2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요자 우위로 바뀌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늘면서 신규 전세 계약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며 “다만 ‘전세의 월세화’가 계속돼 전세 매물이 지속적으로 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갱신권 사용 재계약은 많지만, 신규 계약 문의는 거의 없어"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통상 12월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돼 본격적인 이사철로 여겨진다. 자녀 교육을 위한 임차 수요가 많은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등 학군지에선 매년 이 즈음 ‘전세난’이 반복됐다. 그러나 올해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신규 전세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학군지 전세시장에서도 매물이 쌓이는 분위기다.
13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세 매물은 총 409건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14건)와 비교해 약 30배 늘었다. 은마는 이른바 ‘대전족’(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 얻어 들어온 사람)이 가장 많은 단지로 꼽힌다. 인근 A공인 대표는 “12월에는 새 학기 시작 전 타지에서 이사 오려는 수요가 많아 전세 문의가 끊이지 않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며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은 활발하지만 신규 매물은 문의가 뜸한 편”이라고 전했다.
마음이 급해진 집주인들은 호가를 수천만원씩 낮추고 있다. 은마 전용면적 76㎡는 지난 9월 보증금 10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현재 매물 호가는 최저 6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7월 말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직전의 계약금액(4억6000만~6억5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치동 B공인 대표는 “한 집주인은 보증금 7억4000만원에 은마 전용 76㎡ 전세 매물을 내놨다가 찾는 사람이 없자 가격을 세 차례나 낮췄다”며 “현재 호가는 6억8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은마 건너편에 있는 ‘미도1·2차’도 이날 기준 전세 매물이 262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날(24건)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대치동 학원가 가운데에 있는 ‘삼성1차’도 같은 기간 20건에서 68건으로 늘었다.
목동 아파트 전세시장도 비슷하다. ‘목동신시가지 6단지’는 이날 기준 전세 매물이 33건으로, 지난해 같은 날(8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 단지에서 가장 작은 적용 47㎡는 최고 6억원(지난 7월)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현재 시장에는 4억8000만원짜리 매물이 나와 있다. ‘목동신시가지3단지’도 같은 기간 전세 매물이 2건에서 23건으로 증가했다.
서울 25개 자치구별로는 광진구의 전세 매물이 1년 전 226건에서 이날 1000건으로 약 342.4% 늘어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은평구 264.3%(275건→1002건) △송파구 218.4%(1074건→3420건) △서대문구 178.4%(362건→1008건) △강남구 153.7%(2146건→5445건) △서초구 137.3%(1345건→3192건) 순으로 집계됐다.
전세 대출은 앞으로도 받기가 쉽지 않다. 내년 1월부터 전세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돼서다. 특히 신규 전세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분할상환 조건이 적용돼 상환 부담이 대폭 커질 전망이다.
다만 전세 매물 증가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보유세 부담 등으로 전세가 월세로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월세를 조금이라도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6만280건으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급증하면서 집주인들 사이에서 전세 대신 월세를 받아 세금을 충당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 공급이 지체되면서 청약 대기 수요가 쌓이고 있는 점도 ‘전세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분양가 산정 문제 등으로 연내 계획된 공급이 무산된 단지가 적지 않다. 강동구 둔촌주공(1만2032가구)과 서초구 방배5구역(3080가구)·방배6구역(1131가구), 송파구 잠실진주(2636가구) 등이다. 여기에 사전청약을 하는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노리는 수요까지 임대차 시장에 남아 전세 수요를 떠받칠 것이란 분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사전청약을 기다리는 전세 수요가 3기 신도시 첫 입주가 시작되는 2026년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계약갱신 행사가 끝나 세입자들이 새 전세를 구하게 되면 매물이 다시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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