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웃고, 많이 만나고, 열심히 움직인 당신…오늘도 장수 유전자가 깨어났습니다
수명 결정하는 건 유전 20~30%
개인별 식생활이 70~80%
행복한 장수는 결국 습관에 달려
적절한 영양 섭취·운동하면
과학자 추정 최대수명은 150세
◆ 매경 포커스 / 100세 건강 ◆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행복은 건강에서 출발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자신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사회, 국가에도 축복이다.
나이가 들면 질환이 많아지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장수(長壽)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의술과 함께 '현대의 불로초'라는 재생의학 및 줄기세포 치료의 발전으로 수명 100세 시대(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가 활짝 열렸다.
유엔은 전 세계 100세 이상 인구가 현재 약 57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월 말 현재 거주자 기준 100세인이 6546명(남자 1062명, 여자 5484명)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90대는 24만7037명이다. 일본 100세인이 지난해 8월 말 기준 약 8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식생활 습관을 가진 우리나라도 100세인이 인구 대비 약 3만2000명이 돼야 적정하다. 식민지배,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 굴곡진 현대사로 인해 국내 100세인이 턱없이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인간의 수명은 과연 몇 살일까? 최장수 기록은 생후 122년164일 동안 생존한 잔 칼망(Jeanne Calment·1875년 2월 21일~1997년 8월 4일)이라는 프랑스 여성이다. 칼망의 장수는 유전적 요인이 컸다. 17~18세기 칼망의 조상과 같은 지역에 살았고 비슷한 시기에 혼인 신고를 했던 사람들 중 80세를 넘긴 장수인 55명을 조사해 보니 칼망 가족이 13명이나 됐다. 칼망 가족과 다른 가족의 80세 이상 장수 비율은 24%대 2%였다. 그녀가 어떤 유전자로 인해 장수할 수 있었는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소중한 정보가 담긴 칼망 혈액이 파리의 한 실험실에 보관돼 있다.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인간 수명은 120~125세로 모아지고 있다. 미국 생물학자 레오나르도 헤이플릭은 여러 종류의 동물실험과 인간 세포를 배양하는 실험을 한 결과, 인간의 태아세포는 50회 분열한 뒤 멈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인간 세포는 한 번 분열하는 데 평균 30개월(약 2.5년)이 걸리기 때문에 '2.5년×50회=125세'가 인간 수명"이라고 결론 내렸다. 프랑스 학자 뷔퐁과 플로랑스는 "동물 수명은 성장에 필요한 기간의 5~6배"라는 학설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개는 성장하는 기간이 2년이므로 10~12년이 한계수명이고 소는 5년 동안 성장하므로 한계수명이 25~30년이다. 인간은 20~25세에 성장이 멈추므로 한계수명이 100~150세인 셈이다. 일본 유전학자 유아사 아키라 박사는 인간의 각 기관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간이 25년이고 그 기간의 5배인 125세가 천수라는 가설을 내놨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일본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는 "분자생물학이나 면역학 입장에서 인간이 적절한 영양 섭취와 함께 적당량의 운동을 하면서 필요한 의학적 치료와 예방을 충분히 한다면 125세까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왜 늙을까?
먼저 '마모설'이다. 자주 입은 옷이 금세 해지고 날마다 쓰는 물건이 고장 나듯이 몸도 오래 사용하면 닳고 기능이 떨어져 노화된다는 이론이다. '세포 내 독소 축적설'은 완전히 배출되지 못한 노폐물이 체내에 누적돼 세포를 손상시키고 이로 인해 신체 기능이 약화돼 노화된다는 이론이다. '산화적 손상설'은 몸 안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가 노화를 촉진한다는 이론이다. '노화유전자설'은 유전자가 생체에 노화 현상을 일으킨다는 이론으로 '텔로미어설'로 주목받고 있다. 텔로미어(telomere)는 세포의 염색체 양 끝에서 보호덮개 역할을 하는 DNA의 일부분으로, 신발끈 끝이 닳아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씌워놓은 플라스틱 조각에 흔히 비교된다. 우리는 각 염색체의 텔로미어를 구성하는 DNA 염기쌍을 대략 1만쌍 갖고 태어나지만 몸 안의 세포 하나가 분열할 때마다 50~200쌍의 DNA를 잃는다.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는데 그때마다 텔로미어의 일부가 복제되지 않고 갈수록 분열의 범위가 커져서 마침내 텔로미어가 일정 길이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수명을 다해 노화가 진행된다는 게 텔로미어설이다.
그동안 발견된 노화 관련 유전자는 'age-1유전자' 'daf-2유전자' '시르투인(sirtuin)유전자' 등이다. 이 중 2000년 발견된 시르투인은 노화와 수명에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반응 경로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장수 유전자로 밝혀졌다. 시르투인은 효모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선충, 초파리, 포유류 일부, 그리고 인간에게서도 존재가 확인됐다. 효모, 선충, 포유류를 대상으로 시르투인을 활성화시켰더니 모두 수명이 늘어났다. 효모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만 먹이(포도당)의 양을 줄여 섭취 열량을 75%까지 제한한 결과, 미토콘드리아 내에 NAD(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가 많이 생성되고 이로 인해 시르투인 유전자 활동이 증가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속의 발전소'로 산소를 이용해 몸에 쓰는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소기관이다. 태어날 때 기초 대사량이 높은 사람은 부모에게 좋은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았다고 얘기한다. NAD는 세포의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효소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분해 반응에 작용하며, 니아신(비타민B3)을 원료로 간에서 만들어져 간에 저장된다.
이를 종합해 보면 섭취 열량 제한→미토콘드리아 내 NAD 생성량 증가→시르투인 유전자 활성화→장수로 이어진다. 쥐를 대상으로 당뇨병이나 암이 생기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 뒤 섭취 열량을 제한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쥐들은 질병을 앓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오래 살았다. 섭취 열량을 줄여서 시르투인을 활성화시키면, 다시 말해 장수 유전자를 단련시키면 병든 쥐도 오래 살 수 있다. 오래 살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장수국가 일본에는 '하라하치부(腹八分)'라는 말이 있다. 배가 80% 차면 그만 먹으라는 뜻이다. 일본 아보 도루 니가타 의대 교수와 이시하라 유미 박사는 "우리 몸에는 혈당을 높여주는 글루카곤, 티록신, 코르티손,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등과 같은 호르몬이 10가지에 달하지만 과식으로 높아진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밖에 없다"며 "과식 하게 되면 인슐린 부담으로 이어져 당뇨병, 고지혈증, 암과 같은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장수 대가로 손꼽히는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 교수(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적당하게 몸을 움직이고, 적절하게 먹어야 하며, 배우자·자녀·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배우기에 힘쓰며, 봉사활동이든 뭐든 참여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유전적 요인은 약 20~3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올바른 식생활 습관이 장수의 70~80%를 결정한다. 미국 보스턴대학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장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운동 △스트레스 조절과 같은 생활 습관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천수를 다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으려면 암이나 치매 같은 뇌혈관 질환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암과 치매는 가족력, 유전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올바른 식생활 습관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현 북부에 있는 장수촌 오기미(大宣味)마을 어귀에는 1993년 세워진 돌비석이 하나 있다. 그 비석에는 "우리 오기미촌 노인은 자연의 혜택으로 식량을 구하고, 전통적 식문화 속에서 장수를 하고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80세는 어린아이이며, 90세가 돼 데리러 오면 100세까지 기다리라고 돌려보내라. 우리는 나이 들어 더욱 의기 왕성해 양양해지고, 나이 들고서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장수를 꿈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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