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여성에게 살해당한 흑인 소녀...누가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1991년 15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는 상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려다 주인인 한인 여성에게 살해당한다. 위키백과
1991년 3월 16일 오전 10시. 15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는 오렌지 주스를 사기 위해 엠파이어 주류 마켓 앤드 델리로 향했다. 51세의 상점 주인 두순자는 라타샤가 배낭에 주스를 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주스를 훔치려 했다고 생각했고, 카운터로 다가온 라타샤의 멱살을 잡는다. 이에 맞서 라타샤 역시 두순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 번 가격한다. 두순자는 일어서 나가는 라타샤의 뒤통수를 향해 총을 쏜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라타샤의 왼손에는 2달러가 쥐어져 있었다.
두순자는 법원으로부터 400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 명령과 5년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벌어진 이 총격 사건-두순자 사건 혹은 라타샤 할린스 사건-은 이후 미국 내 흑인-한인 인종 갈등의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LA는 13일 전 아프리카계 미국인 로드니 킹이 경찰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으로 이미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들끓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두순자 사건이 겹치며 갈등의 초점이 흑인-한인 간 적개심으로 번졌고, 이후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낸 LA폭동으로까지 이어진다.
1991년 한인 여성 두순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라타샤 할린스를 자신의 상점에서 살해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LA타임스 기사.
최근 출간된 스테프 차의 장편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바로 이 LA폭동과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1986년 캘리포니아 출생의 한국계 미국인인 스테프 차는 이 작품으로 2019년 LA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거대한 문화적 사건의 그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투쟁하는지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은 두 화자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때 갱단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이삿짐센터에 일하며 교도소에 수감된 사촌 대신 남은 가족을 돌보는 흑인 남성 숀 매슈스. 그리고 한인 마켓에서 약사로 일하며 2년 전 부모님과 의절한 언니를 대신해 부모님과 함께 사는 한인 여성 그레이스 박. 인종도, 성별도, 생활반경도, 어떤 접점도 없어 보이는 이들 두 인물의 삶은 28년 전 벌어진 사건-한국인 여주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쏜-에 의해 다시금 교차한다. 그 교차는 28년 뒤 한인마켓에서 또다시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으로 이뤄진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발행. 404쪽. 1만3,800원
이 총격사건으로 인해 28년 전 명백했던 피해자-가해자의 구분은 약 사반세기의 시간을 건너며 뒤섞인다.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이 가졌던 복수심과 죄책감 역시 서로 공유해야 할 감정이 된다. 여기에 그들이 피해자-가해자일 뿐 아니라 가족의 든든한 누나였고 자애로운 어머니였다는 디테일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진다.
탐정 소설로 데뷔해 현재 미스터리 작품 편집도 맡고 있는 만큼, 작가는 이미 역사 속 구문이 되어버린 이 사건을 현재로 생생하게 불러내기 위해 자신의 장기인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이미 법원에서 결론 내려진 28년 전의 사건과 달리, 28년 후 총성은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히 범인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다다랐을 때 오래된 복수와 용서를 마주한 독자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명민한 설계였음을 깨닫게 된다. ‘너의 가족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미스터리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인종과 계급에 대해 탐구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의 존엄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스테프 차는 미국 내 한인과 흑인의 인종갈등을 다룬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로 LA타임스 도서상을 받았다. 스테프 차 홈페이지 캡처
작품의 제목은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힙합 가수 토디 티의 ‘Batterram’(1985) 가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이 노래는 당시 레이건 정부가 추진했던 ‘마약과의 전쟁’에서 흑인과 라틴계 커뮤니티를 난폭하게 진압한 공권력을 비판한 곡이다.
1985년 쓰여진 이 가사는 1991년에도 유효했고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020년 5월 25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고, 2021년 3월 16일 애틀랜타에서는 4명의 한인과 2명의 중국계 미국인이 아시아계 미국인 업소를 노린 총기난사로 사망했다. 어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불행히도, 어떤 소설은 영원히 낡지 못한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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