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없는’ 전기차의 역습…2030년 생산직 60%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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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없는’ 전기차의 역습…2030년 생산직 60%는 사라진다

보헤미안 0 300 0 0

지난 21일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 투입을 저지하는 모습. 독자 제공



지난 한 해 전세계는 전기차 시대를 향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앞다퉈 미래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미래차의 등장과 함께 사회가 겪게 될 성장통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전통적인 노사관계의 해체는 아직 펼쳐보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미래차가 우리 사회에 일으키고 있는 균열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 20일 낮 1230분,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을 만들던 공정이 갑자기 멈춰섰다. 노동자들이 차체 투입을 가로막은 탓이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전기차 핵심 부품의 외주화.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대신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기차 생산 계획을 확정짓고, 그 첫 타자로 아이오닉5를 시범 양산 중이다. 이대로라면 완성차 공장의 절반가량은 내연기관차와 함께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울산공장의 풍경은 전기차 시대에 자동차산업이 맞닥뜨리게 될 구조조정 드라마의 예고편을 보여준다. 산업 패러다임 급변으로 기업들은 한편으론 신사업에 투자재원을 쏟아부으면서 다른 한편에선 원가절감에 어느 때보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노조의 ‘고용 안정’ 요구에 확답을 줄곧 피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구조조정 이미 시작된 현대차 28일 현대차 노사 양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의 파워트레인에 해당하는 E-GMP(일렉트릭-글로벌 모듈러 플랫폼) 전기차의 PE(파워 일렉트로닉스) 모듈을 모두 부품 계열사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E-GMP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오는 3월 출시하는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모든 전기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E-GMP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경우 현대모비스와 (그룹 바깥의) 다른 부품업체들을 경쟁시켜 원가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현대차나 기아는 선택지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현재 현대차 공장의 절반가량은 완성차 조립, 나머지 절반은 주로 내연기관차 파워트레인 생산을 맡는다. 전기차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후자는 점차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단체교섭 때 전기차 PE 모듈 물량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노조 집행부도 이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집행부 관계자는 “매번 임단협 때마다 성과급이나 챙기면서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는 사이 현대차는 이미 사실상의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매년 정년퇴직 인원만큼 공정을 대폭 없애는 작업이다. 회사는 이를 ‘공정개선’이라 부른다. 지난해 ‘개선’ 대상은 1041개 공정으로 모두 1572명분이다. 같은 해 정년퇴직 인원 1436명을 조금 넘는다. 1970명이 정년퇴직하는 올해는 1712명분의 공정이 없어질 전망이다.

인력 충원이 필요한 곳에는 신규 채용 대신 시니어 촉탁제로 대응하고 있다. 시니어 촉탁제는 정년퇴직한 뒤에도 최장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2019년 노사 합의로 도입됐다. 한 조합원은 “최대한 신규 채용을 하지 않으려는 회사와 정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은 고령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10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친환경 미래차 현장방문’ 행사 종료 후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대차 공영운 사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 이상수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기아차 송호성 사장. 현대차그룹 제공


■ “노사 모두 대책이 없다” 지적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 이뤄지는 비가역적 구조조정이란 측면에서 혼란은 더욱 심하다. 향후 노사분쟁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인다. 최근 울산1공장에서 빚어진 충돌이 대표적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조합원은 “백번 양보해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줄 수 없다면, PE 모듈과 서스펜션을 통합하는 프런트 섀시 모듈이라도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라며 “아이오닉5 공정을 중단시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총고용 보장에 대해서도 최근에는 언급 자체를 꺼린다. 정년 보장이 아닌 ‘고용 보장’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10월 정의선 회장과 만나 “총고용 보장 합의서에 대한 믿음을 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정 회장이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규직 생산직 비중이 높은 현대차·기아의 생산 물량을 대폭 줄이는 계획은 조만간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신규 채용을 사실상 ‘0’으로 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에는 생산직의 40%만 회사에 남게 된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5만 조합원’의 현대차 노조도 옛말이 되는 셈이다.

현대차 고용안정위원회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안정위원회는 2019년부터 미래차 시대에 대비해 생산직 재배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 자문위원은 “현실적인 재배치 방안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며 “기본적으로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인데 본사에서는 (고용안정위를) 형식적인 절차라고만 여기고 이대로 정리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의 위축은 자동차산업 전반에서 변주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차 투자에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내연기관차 생산 쪽에서 원가를 줄여야 할 유인이 커지고 있어서다. 현대차 원가절감추진위원회는 2018~2025년 총 41조원을 절감한다는 계획을 올해 새로 수립했다. 기존 목표인 2018~2022345000억원에서 기간과 금액 모두 늘렸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노사 모두 단기 이익에만 골몰하는 데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해 자동차산업이 어떤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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