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인 척 속여서 미성년자 간음한 30대... 대법서 '무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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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인 척 속여서 미성년자 간음한 30대... 대법서 '무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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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 간음죄 처벌 범위 넓히며 판례 변경게티이미지뱅크

"나를 스토킹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 때문에 죽고 싶다. 힘들다. 우리 헤어질까?"

2014년 8월 어느 날, 중학생 A양은 휴대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나 막 사귀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2학년' 남자친구 B군에게서 이런 당혹스러운 메시지를 받았다. A양은 "헤어지자"는 그의 말이 두려웠다. "나를 버리지 말라"며 애원하기도 했다.

절박한 심정의 A양에게 B군은 '네가 도와주면, 스토킹녀를 떼어낼 수 있다'면서 이상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A양과 'B군의 선배' 김모씨가 성관계하는 영상을 찍어, 스토킹녀에게 보내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는 요구였다. 황당한 요구였지만 A양은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B군이 시키는 대로 했다.

어이없는 사건은 'B군의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김모(당시 36세)씨가 꾸민 일로 드러났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위해 앱상에서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고, 나이도 10대 또래인 척 가장해 A양을 유인했던 것이다. 성관계 동영상과 사진이 혹시라도 유포될까 두려워 사건 발생 2주 뒤 수사기관을 찾은 A양은 그제야 B군의 존재 자체가 거짓이었음을 알게 됐다.

김씨는 아동ㆍ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됐지만 A양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1ㆍ2심 재판부가 모두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1심에서는 '위력'으로, 2심에서는 '위계'로 간음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양은 B군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그의 요구를 따랐다" "성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자의에 의해 성교를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위계를 좁게 해석한 종전 대법원 판례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7일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나온 지 5년 만에 사건을 유죄 취지로 광주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간음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대상'에 대해 피해자에게 오인ㆍ착각ㆍ부지를 일으킨 경우에도 위계를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놓았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간음죄 처벌 범위를 넓힌 셈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나이ㆍ성장과정ㆍ환경ㆍ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면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과거와 달리 n번방 사건 등으로 그루밍(길들이기ㆍ가해자가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고, 법원도 비로소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 위원은 “현행법상 그루밍 성범죄 처벌 규정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 법 규정으로 위계에 의한 미성년자 성범죄를 보다 적극 처벌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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