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금리는 처음"…은행원들도 신용대출 '영끌'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더 낮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두 대출상품의 금리를 결정하는 방식이 다른 데다 최근 은행권의 신용대출 영업 경쟁이 치열해진 점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은행 직원들조차 "이렇게 좋은 금리는 보기 힘들다"며 앞다퉈 신용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집값 잡기'에 사활을 건 정부가 주담대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상황에서 신용대출로 주택 구입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의 지난 14일 기준 신용대출 금리는 연 1.74∼3.76%, 주담대 금리는 연 2.03∼4.27%로 집계됐다.
은행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입사 이후 신용대출 금리가 전반적으로 주담대 금리보다 낮아진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과거 신용 1등급의 고액 연봉자 등 극소수의 신용대출 금리가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보다 낮을 때는 간혹 있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신용 1~2등급 직장인이면 주담대보다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대출과 주담대 간의 '금리 역전 현상'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대출금리 결정 구조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한 금리 하락 속도가 신용대출 쪽이 더 빠르다.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의 기준으로 삼는 금융채 6개월물 금리는 1년 전보다 0.719%포인트 떨어졌지만, 주담대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는 같은 기간 0.0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주담대보다 만기가 짧아 단기 채권의 시장금리를 사용한다"며 "최근 단기물의 금리 하락 폭이 더 컸다"고 말했다.
신용대출과 달리 주담대에는 담보설정 비용 등의 고정비가 들어가는 점도 차이를 키우는 요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은 최근 연 0.5%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순이자마진(NIM)을 1.5% 정도로 가정하면 신용대출 금리는 2% 안팎으로 받을 수 있다"며 "주담대에는 은행이 부담하는 설정비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1.5%보다 더 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촉발한 신용대출 금리 인하 경쟁도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 관계자는 "주담대와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된 데다 이렇게 금리까지 낮아지니 신용대출을 받아 주택 구입자금 등에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 신용대출은 급증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용대출 증가 폭은 지난달 2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8월 들어서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3일 기준 121조488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말에 비해 9영업일 동안 1조2892억원 늘어난 규모다. 지금 추세라면 이달에도 2조원대 증가 폭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신용대출 상당수를 주택 관련 자금 수요로 추정하고 있다.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비율(LTV)이 40%까지 내려간 가운데 주택 매매·전세 수요자들이 부족한 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고 있어서다. 한은은 최근 "6·17 부동산 대책 직전 활발했던 아파트 거래의 매매대금, 지난달 늘어난 수도권 아파트 분양의 계약금, 최근 전셋값 상승에 따른 자금 수요 등이 신용대출 증가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할 때는 자금 용도를 '주택 구입' '전세자금 반환용' '생계자금' '투자자금' 등 구체적으로 써야 하지만 일단 대출이 나가고 나면 확인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신용대출도 더 조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따라 3개월 이내 주담대와 신용대출은 동시에 승인하지 않는 등 신용대출의 사용처 전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신용대출이 더 불어나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관측에 일단 선을 그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금융권에 '돈을 풀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 신용대출을 억제하면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이유가 경제 사정 악화 때문인지, 주식 투자용인지, 부동산 투자용인지는 알 수 없다"며 "일단 코로나19가 해소될 때까지는 이 상태를 어떻게 하기는 어렵다"고 했였다.
대신 금융감독원이 나서 은행권의 신용대출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금융사의 대출 규제 준수 여부 점검을 강화하고 위반 사례를 엄중히 조치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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