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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의 수난… 미얀마 세 번째 '쿠데타' 왜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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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미얀마 군부가 1일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다. 미얀마군TV는 이날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조치들을 실행했다"면서 "군은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했다. 또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전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6년 만의 일이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사진=AFP이날 집권당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및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구금됐다고 발표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수치 고문이 이끄는 NLD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후 53년 동안 지속한 군부 지배를 끝냈다. 지난해 11월 열린 총선에서도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석권하며 승리해 '문민정부 2기'를 열었다.

그러나 군부는 선거 직후 유권자 명부가 860만명가량 실제와 차이 난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쿠데타의 씨앗이었다. 군부는 2008년 자신들이 제정한 헌법에 따라 전체 의석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주요 각료직도 군부가 지명한 인사들을 위해 남겨져 있다.

수치, 가택연금 15년의 수난

아웅산 수치/사진=AFP구금된 수치 고문은 군사정권 아래 15년간 가택연금을 당한 정치범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민주화의 상징이다.

1945년 미얀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하고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1988년 4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미얀마에 왔다. 이 때부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군정은 1989년 수치 고문을 가택연금했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뒀지만,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수치 고문은 1991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가택연금 상태라서 남편과 두 아들이 시상식에 대신 참석했다.

수치 고문은 1995년 가택연금이 해제됐으나 이후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며 활동했고 2010년 말 20년 만에 총선이 실시되면서 전격 석방됐다. 그는 2012년 3월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수치 고문은 2015년 11월 자신이 이끄는 NLD 당이 총선에서 압승하고도 군부가 만든 헌법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게 되자, 헌법에 없는 '국가 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 위의 지도자가 됐다.
 

독립 후 3번의 쿠데타

미얀마에선 1948년 영연방으로부터 독립 후 이번까지 총 3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1962년 네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우 누 총리를 축출한 뒤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1988년 일어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시위로 네윈이 사임한 뒤엔 곧바로 소우 마웅 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했다. NLD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틴 우 당총재에 대한 가택연금이 시작됐다.

2008년 신헌법이 제정되고 2010년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총선에서 승리한 뒤 수치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이 해제됐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NLD이 전체 의석의 59%를 확보하면서 문민정부 1기가 출범했고 수치 여사는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작년 11월 또 한번의 총선이 치러져 NLD가 전체 의석의 83.2%를 확보했으나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를 요구하며 쿠데타를 시사했다. 유엔과 현지 외교사절단이 자제를 촉구했으나 1일 군부는 쿠데타를 선언, 수치 고문과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했다. 또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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