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Y-STR 일치하지만, 동일인이라 볼 수 없어"[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최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도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A(64)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의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쟁점은 Y염색체 감식결과였다. 흉기에 남아있던
DNA 증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유죄와 무죄가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론은 완전히 달랐다. 1심은 흉기에 묻은 유전자 증거를 강력한 유죄 증거로 판단했다. 항소심은 피고인의 유전자가 아닐 수 있다며 무죄의 이유로 삼았다.
Y-STR(
short tandem repeat)형 감정 결과 해석 때문이다.
DNA 유전자 감정은 보통
STR(
short tandem repeat)형 분석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염기서열 반복 구간'을 의미하는
STR은 그 반복 횟수가 개인마다 달라 개인식별용 분석 자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Y-STR형은 다르다. 범죄 현장에서 나온 소량의 남성
DNA을 검출해 Y염색체상의
STR 특징을 분석하는 자료로 쓰인다.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같은 성씨일 경우
Y-STR 염기서열이 일치할 가능성이 높아 부계혈통 확인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즉,
STR형 분석은 개인식별력이 인정되는 반면
Y-STR형 분석은 동일 부계의 남성인지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1심은 흉기에서 검출된
Y-STR 유전자형 20좌위 가운데 피고인의 것과 동일한
Y-STR 16좌위가 검출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인정해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가 발견됐는데, 여기에 아무런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STR 유전자 감정결과 어떠한 유전자형도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와 일치하는
Y-STR 유전자가 나왔지만 인적 동일성은 식별할 수 없어 해당 유전자가 A씨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흉기에서 나온 유전자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재판부는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가운데는 피고인과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서 "이 경찰관은 흉기에서 나온
Y-STR 유전자형이 15개 좌위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이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흉기에 대해 지문감식은 곧바로 실시했지만 곧바로 압수하지 않고 현장에서 철수한 후 약 6~7시간이 지나 피해자의 가족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았다"며 "가족 진술에 따르면 당시 현장 출동 경찰관들이 모두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결국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지난해 7월8일 오전 2시13분께 제주 시내 한 주택에 들어가 피해자 B씨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아 왔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자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다.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판결이 있은 후 이번엔 검찰이 재판 결과에 오해가 있다며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