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유료회원 3명 전날 경찰 자수
수사와 언론보도 등 부담 느꼈을수도
n번방 전 회원, '내부고발자' 수사 협조
"n번방 가입자들 강력처벌" 요청 쇄도
전문가들 "처벌 언급 성급…수사 먼저"[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25)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0.03.25.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 박민기 이기상 기자 =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찍은 성착취물을 공유한 텔레그램 '박사방'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자 유료회원 등 가담자들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고 경찰에 자수하는 등 신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경찰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압박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이는 가운데, "저들이 자수했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감형을 해주는 것 아니냐"며 반감을 비추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조주빈(25)이 운영한 텔레그램 박사방의 유료회원으로 활동한 3명이 최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이 방의 회원으로 활동한 닉네임 1만5000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n번방과 박사방 등에서 이뤄진 범행 관련 내용이 연일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오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원한다' 등의 청원글을 올리면서 일부 피의자들이 두려움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 5개 중 4개가 텔레그램 n번방 참여자들의 신상 공개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다. 이 청원들은 최소 약 45만명에서 최대 약 269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한 때 n번방의 회원이었다가 자신의 죄를 반성한다며 최근 경찰과 언론 등에 n번방 관련 내용을 알리고 있는 A씨 역시 "감형을 목적으로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등의 질타를 받고 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 mangusta@newsis.com형법에 따르면 자수는 형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근거가 되고, 추후 재판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을 내부고발자 및 수사협조자, 사회운동가로 지칭하는 A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제가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는 이유는 저도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있고, 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며 "어차피 저는 꿈도 명예도 친구관계도 다 잃었다. 잃을 것이 없으니 더 용감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끝까지 유포자들을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은 n번방 등 관련 범죄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이 자수와 수사 협조 등을 통해 처벌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에 대해 반감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온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괜히 감형이라도 받고 싶어서 자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싹 다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n번방·박사방 등에 가담한 뒤 자수한 가해자들에게 감형 등 선처없는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피해자 74명 중 미성년자가 16명이라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인지 걱정된다"며 "아무리 자수를 하고 초범이라고 해도 감형 없이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다른 네티즌은 "조두순 때처럼 터무니없는 형량에 감형이라도 되면 어쩌나 걱정"이라며 "가해자들의 인권 운운하며 신상 공개도 안 될까봐 불안한데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형벌이 내려진다면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계속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또 생길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달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0.03.25. photo@newsis.com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들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처벌은 법원에서 내리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구체적인 범행 사실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해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법에 '자수하면 감형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감형을 할 수도 있다'고 명시돼 있고, 일반적으로 자수를 하면 감형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지금 국민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감형 여부'가 아니라 성범죄 등에 관대한 한국에서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지 않도록 법을 바꿔야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지금 단계에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행 사실과 가해자들을 색출해내는 것이 중요한데 강력 처벌하라는 목소리만 높아지면 숨어있는 다른 가해자들이 위축돼서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릴 것"이라며, "자수한 사람에게 완전한 무죄 판결을 내리라는 것이 아니다. 성범죄 등 관련 기존 처벌 수위를 먼저 강화한다면 감형을 해도 지금보다 한층 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직 경찰 수사도 제대로 안 끝난 상황에서 벌써 형량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경찰 수사 외에도 검찰 수사와 재판부 판결 등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지금은 성착취 범죄들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확실하게 밝히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감형을 받기 위해서는 자수 이후 계좌거래 내역과 공유된 영상, 대화내용 등을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며 "수사 협조 정도에 따라 이들이 단순히 형량을 줄이려고 꼼수를 부린 것인지, 진심으로 반성해서 자수한 것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