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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공산당의 유일한 비판자' 마오쩌둥 비서 리루이 101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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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과오 지적했다가 '옥살이' 수난
시진핑 개인숭배에도 반대 목소리

리루이[사진 바이두]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서를 지내면서도 그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리루이(李銳)가 16일 베이징에서 101세로 타계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리는 말년까지 정치적 개혁을 위해 계속 싸움을 했으며 일당 독재와 견제 없는 권력의 위험성을 자주 경고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딸인 리난양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리루이는 몇 년간 폐암으로 투병해왔다.

유족은 딸과 둘째 부인인 장위전이 있다.

그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을 맡은 시대에 어쩌면 유일하게 지배 엘리트 가운데 반대의 목소리를 낸 인물로,시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 운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고 SCMP는 전했다.

지난해 공산당이 중국 헌법을 바꿔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없앤 것에 대해서도 "종신제를 원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1980년대에 당 관리들의 권력을 견제하는 조치를 추진했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자니 라우 유이시우는 그에 대해 "당의 초기에는 전형적인 진실한 공산주의자였고 당의 후년에는 충실한 반역자였다"고 평했다.

청나라가 무너진 지 6년 뒤인 1917년에 태어난 리는 중부 허베이성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역 군벌과 국민당에 저항했고 대학 때는 항일 운동에 투신했다.

1937년 서북부의 공산당 근거지인 옌안을 찾아가 당에 들어갔고, 1958년 마오쩌둥의 개인 비서가 됐다.

하지만 이듬해 루산에서 열린 회의에서 기근으로 3천만∼6천만명을 숨지게 한 대약진운동을 공개 비판해 당적과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농장으로 보내진 그는 굶어 죽을 뻔하기도 했다.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혼란기에는 8년간 옥살이를 했다.

마오쩌둥 사망 후 1979년에 정치적으로 복권된 그는 당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을 지냈다.

리는 마오쩌둥의 곁에서 일했던 것을 바탕으로 90세가 넘어 마오쩌둥에 대한 책 5권을 펴냈는데 이들 책 모두 해외에서는 출판됐지만, 중국에서는 금지됐다.

그는 마오쩌둥이 자신의 정책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마오쩌둥은 사람의 목숨을 전혀 중시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자주 자신을 "진시황과 마르크스를 합친" 인물로 묘사했다고 그는 전했다.

리는 2013년 출판된 회고록에서 "하나의 당, 한 명의 지도자, 하나의 이데올로기 체제"는 사회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손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세계적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7년부터 최근의 2017년까지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대회 때마다 당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서방식의 정치 개혁을 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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