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협의없이 가슴을..." 봉준호 '젠더 감수성' 도마
【칸=AP/뉴시스】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뉴시스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3일까지 374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5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서 이 작품이 봉 감독의 2006년작 '괴물'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생충'을 향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봉 감독의 성(性)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와 관심을 끈다. 일부 누리꾼들이 봉 감독의 과거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젠더 감수성' 결여를 지적한 것. 문제되는 부분은 영화 '마더' 촬영 도중 사전 협의 없이 여성 배우의 가슴을 만지도록 지시한 것이나 과거 인터뷰에서 터널을 여성의 '성기'에 비유한 발언 등이다.
전문가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는 부분"이라며 "사과할 내용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9일 롯데시네마 합정에서 열린 '해피앤딩 스타체어'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혜자와 봉준호 감독의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여성 배우 가슴 만지는 장면, 사전 협의 없이 촬영?
배우 김혜자는 지난달 9일 롯데컬처웍스가 기획한 관객과의 대화 행사(GV)에서 영화 '마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쳤다. 이 자리에는 봉준호 감독도 참석했다.
'마더'에 도준(원빈 분) 엄마 역으로 출연한 김혜자는 이날 촬영 도중 발생한 당혹스러운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원빈씨가 진구씨(진태 역)한테 엄마하고도 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 그날 들어와서 자는데 갑자기 내 가슴을 만져요"라고 밝혔다.
이어 "가슴 만지는 거 아닌데, 그렇지만 '무슨 까닭이 있겠지'하고 가만있었다. 그런데 (촬영) 끝나고 나서 자기(봉 감독)가 만지라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요구하자 봉 감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보통 영화의 모든 것들이 감독에 의해서 컨트롤된다는 환상을 가지기 쉽지만, 많은 일들이 현장에서 그냥 벌어진다"고 해명했다.
봉 감독이 "원빈씨가 아기같이 만진 거잖아요. 갓난아이 같은 자세로 자잖아요"라고 김혜자에게 묻자 그는 "맞아요"라고 답하면서도 "그런데 안 하는 짓을 하니까 놀랐다"고 회고했다. 또한 "원빈씨에게 '왜 갑자기 손을 넣었어?'라고 물어보니, 감독님이 해보라 그랬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성 배우의 가슴을 만지는 민감한 장면을 사전 협의 없이 즉흥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이날 김혜자가 유쾌하게 웃으며 발언을 했지만, 해당 장면을 촬영한 배우가 공식석상에서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만큼 봉 감독의 자성(自省)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터널은 질, 기차는 남근" 과거 인터뷰도 도마 위에
봉준호 감독의 과거 인터뷰도 논란이 되고 있다. 봉 감독이 2011년 영화 매거진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저는) 좁고 긴 이미지 공간을 무척 좋아해요. 그러니 제가 <설국열차>를 찍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흥분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미치겠는 거지요. 성적 흥분에 미칠 것 같아요. 기차가 밖에서 보면 남자의 성기고요. 안에서 보면 여자의 성기예요"라며 "터널이 질(膣)이고 기차가 남근(男根)이 되는데 들어가 있으면 기차 안이 또 질이란 말이에요"라고 밝혔다. "기차 속을 관통해 질주하는, 그래서 너무 흥분이 된다는 거지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또 "'마더'가 사실 섹스에 관련한 영화잖아요. '마더'는 섹스를 하는 인간과 섹스를 못 하거나 안 하는 인간으로 구분되거든요"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그는 "(영화 속) 김혜자도 섹스에 억압되어 있잖아요. 그러다가 혜자도 이제 섹스로 들어가는 구조잖아요"라며 "그런 세계와 가장 먼 것처럼 보였던 드라이한 엄마가 그런 축축한 세계로 가는 거지요, 마침내 섹스를 하는 거지요.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사정을 하면 얼굴에 정액이 탁 튀듯이. 사실 전 그렇게 찍었어요"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발언 역시 온당치 않았다며 문제 삼고 있다. 반면 봉 감독의 발언을 예술의 영역인 영화를 자유롭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비유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이촌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봉준호 논란, 시대가 달라졌다는 증거?
봉준호 감독을 대상으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반되는 논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발언이 페미니즘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사소한 요소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의 '마더' 촬영이나 이런 문제점은 지금의 눈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황 평론가는 봉 감독의 공과(功過)를 모두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태프들과 표준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시간을 준수한 것은 잘한 것이다. 영화 제작 환경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해당(성인지) 논란이 봉 감독을 헐뜯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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