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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성훈, '올시즌 난 벼랑끝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보헤미안 0 609 0 0



“그야말로 꾸역꾸역 던졌죠.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하네요.” 
김성훈(20.한화)은 볼그레한 두 뺨 사이로 하얀 미소를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2017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2라운드 전체 15번으로 투수로 한화의 지명을 받은 김성훈은 올 시즌 1군 입성을 넘어 준 플레이오프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렸다. 입단 2년 차 치고 빠른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년 전을 돌이켜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김성훈은 입단 첫 해 어깨 부상으로 재활군에서 지냈고 완치 후 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과 맞서 싸워야했다. 스스로 팀을 떠나 군 입대를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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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오후 서울 종로구 동묘 근처 모 커피숍에서 김성훈을 만났다. 여드름 났던 자리 불그스레해진 볼은 경기고 시절과 별 차이 없이 여전했다. (이하 인터뷰 전문)


Q. 12월 24일인데 특별한 약속이 없나?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


“오늘이 이브인지도 모르고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웃음). 오늘 해야 할 운동은 다 하고 왔다. 시간 많다(웃음). 곧 새해가 되니 시즌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 뿐 이다. 며칠 전 광주에서 올라와 이모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 팀 합류 전까지 웨이트와 기술 훈련을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Q, 경기고 재학 당시 집이 서울 아니었나? 대전이 아닌 광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고등학교 땐 김민호 코치님께서 광주에서 혼자 사셨다. 엄마가 나를 챙겨주시느라(웃음). 프로 지명을 받고 나서 엄마가 아빠를 따라 가신 것이다. 올 초 광주로 이사를 갔다. 난 서산에서 지내거나 1군에 올라와 있을 땐 대전 숙소에서 지내서 광주 집이 낯설더라(웃음). 길도 잘 모르고 아무래도 좀 더 시설이 좋은 센터를 찾다 보니 서울로 오게 됐다. 또 모교 경기고에서 개인 운동도 할 계획이다.”


Q, 아버지께 코치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특이하다. 아빠가 더 친근하지 않나?


“가끔(웃음) 주로 전화 통화 할 때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그럼 웃으신다. 아빠라고도 할 때도 있지만 다 컸으니 예의를 차리려는 마음도 있고 존경하는 마음의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싶거나 조언이 필요하다 싶을 때  코치님이라고 부른다(웃음).”
 
Q. 같은 업종이라 서로의 고충을 너무 잘 알 거 같다.  


“한창 시즌 중일 때 바빠도 그때가 좋은 거 같다. 겨울은 이래저래 뒤숭숭하지 않나? 보직 이동도 많고 재계약을 맺어야 하니까. 아버지께서 이번에  야수 총괄 수석 코치가 되셨다. 원래 수석 코치로 통합 되어 있던 걸 투수와 야수로 구분을 한 거라 하더라. 승진인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땐 막연하게 코치로 활동하시고 계시구나 했는데 막상 내가 프로에서 생활하다 보니 지도자 생활도 쉬운 직업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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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Q,오랜만이라 그런지 못 본 사이 성숙해지고 차분해진 것 같다. 프로라는 사회가 사람을 바꿔 놓은 건가?


“그건 아닌 거 같고(웃음). 워낙 롤러코스터 삶을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고 3때, 작년 그리고 올해까지 지옥과 천국을 경험했다. 외야수를 보다가 갑자기 시즌 중반 투수로 전업을 했는데 다행히 한화 지명을 받아 생각지도 못한 프로선수가 됐다. 그런데 작년 부상 이후 입스(yips)가 온 바람에 맘고생이 심했다. 캐치볼 시간이 정말 죽을 만큼 싫었다. 내 볼을 받아주는 상대 선수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신경이 쓰이고 두려웠다. 지켜보는 코칭스태프의 시선까지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걸 견뎌내고 극복했다(웃음). 올해 퓨처스 리그에서 선발로 시작해 1군에 올라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포스트시즌 큰 무대도 경험했다. 짧은 기간 많은 일이 일어났다(웃음) 원래 긍정적인 성격인데 훨씬 더 긍정적이 됐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지금은 그 어떤 어려움이 덤벼도 두렵지 않다. 이겨 낼 자신 있다.”


Q, 대부분 프로행이 힘들다 싶으면 대학을 선택하는데 본인은 그 반대의 행보를 택했다. 흔치 않은 일인데 그걸 해냈다. 완전 대박 사건이었다.


“타격 기록이 너무 저조해 냉정하게 판단해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다.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투수 전향을 결심했다. 나름 어깨도 강했고 미련도 있던 터라. 처음엔 엉망이었다. 볼 스피드만 빨랐을 뿐 제구도 변화구도 형편없었다. 후반기 주말리그 성지고전 처음 던져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그때 삼진을 7개나 잡았다. 그 날을 이후 3경기 더 등판했다. 그 중 동산고전 때가 아버지가 목동구장에 찾아 오셔서 내 피칭을 보셨다고 하더라. 난 몰랐다. 개인적으로 선발로 나가 5.1이닝을 던진 부산고와의 경기가 가장 잘 던졌던 것 같다. 가장 길게 던지기도 했고 구위도 최고로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2라운드는 기대도 생각도 못한 순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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