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사례, 더 감동" 폭력 물든 체육계에 던지는 해법
[오마이뉴스 김봉건 기자]
'전 세계 축제'라고도 불리는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우리는 밤잠을 설쳐가면서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했다. 아니 어쩌면 메달에 환호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체육계 역시 이에 부응하며 그동안 올림픽 메달 숫자를 근거로 한국이 세계 10대 체육 강국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뒤에 숨어있는 폭력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세계 10대 체육 강국을 자부하던 우리나라 체육계의 민낯이 낱낱이 까발려진 것이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피해 사실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정부가 체육계 폭력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등 체육계의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메달과 폭력의 연결고리
▲ SBS <뉴스토리> "메달과 폭력' 편의 한 장면 |
ⓒ SBS |
"메달을 땄을 땐 기뻤다. 그러나 메달을 따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뭔가 스스로의 목표를 세우고 훈련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혼나는 것이 무서워 강압적인 훈련을 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움직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주민진 선수가 선수시절 경험한 폭력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그녀는 "머리채를 잡고 머리카락이 빠질 때까지 흔든다. 스케이트 날집으로 피가 날 때까지 같은 부위를 계속해서 때린다. 폭행을 가하다가 이온음료를 먹이고 폭행을 이어간다"고 증언했다. 폭행의 일상화였다. 이렇듯 폭행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무뎌지는 걸 경험하게 된단다.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려야겠다는 목표의식은 사라지고 '아, 오늘은 맞지 말아야지', '맞지 않으려면 시합을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선수 시절의 가혹한 훈련과 폭력은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공황장애와 폐쇄공포증이라는 꼬리표는 평생 동안 그녀를 쫓아다니며 간헐적으로 괴롭혀온 주체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이 전부 금메달로 보상이 될 수 있을까? 주민진 선수는 사회에서 그러한 시각과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 SBS <뉴스토리> "메달과 폭력' 편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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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 속 메달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종목의 양정모 선수였다. 당시 선수단은 카퍼레이드까지 펼쳤으며, 국민들의 열띤 환영을 받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이 훈련하는 선수촌의 광경은 흡사 군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올림픽 메달은 이처럼 개인의 영광을 넘어 어느덧 국위를 선양하는 국가적 자산의 일종이 된 것이다.
정부는 최근 체육계 성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국위 선양을 체육의 목적으로 삼는 정책기조를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이 과정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요구하면서 현재와 같은 구조를 만든 데에 정부의 책임이 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대책을 살펴보면, 메달과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추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제1조에서 국위선양을 법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도 추진된다. 이렇듯 체육계를 개혁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강력하게 천명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현실의 변화를 낙관할 수 없다. 체육계 내부에서 개혁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는 "체육계는 문제가 생기면 덮기 위해 급급해하고 축소하려고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라며 "시간만 좀 끌다가 여론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그런 체육계의 병폐를 또 다시 시도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우려했다.
▲ SBS <뉴스토리> "메달과 폭력' 편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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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에 대한 인식 변화, 체육계도 화답해야...
사회 일각의 시각도 변화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한체육회가 최근 체육계의 폭력 실상을 조사한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한 학부모들의 답변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자신의 자녀가 메달을 따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 매를 맞거나 혹독한 체벌 받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달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정용철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이상화 선수의 사례를 들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전체 몇 위를 하거나 금메달 몇 개를 따는 것 따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상화 선수가 500미터 은메달을 땄음에도 그 경쟁자인 일본 라이벌 선수의 품에 안겨 서로를 격려해줄 때 더 감동을 한다.
▲ SBS <뉴스토리> "메달과 폭력' 편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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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움트기 시작했다. 이는 좀 더 커다란 변화의 시작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체육계도 이에 화답해야 할 차례다. 과거처럼 미온적인 변화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시대적 조류다. 이참에 우리 체육계는 음습한 폭력의 연결고리인 성적 지상주의와 국위 선양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체육으로 거듭나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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