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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범죄·탈선의 상징?… 이젠 당당한 프로스포츠

마법사 1 297 0 0

김기제 대표에게 듣는 한국당구 135년史 / 1980년대 초 조폭 ‘줄’ 없으면 영업 못해 / 18세 미만 출입 금지 1993년에야 풀려 / 2014년 학교 근처 설치 규제 철폐 견인 / 세계대회 잇단 개최… 프로당구대회 출범 / 한국, 세계랭킹 10위권 내 2명 ‘맹활약’ / 전세계 당구인들의 ‘메카’로 자리매김 / 당구史 기록으로 남기려 막바지 작업 중
 

‘無罪(무죄) 고교생 强盜(강도)로 연행 혐의 없자 不良輩(불량배)로’ 1981년 8월 한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내용인즉 강도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당구를 치던 고교생을 잡아다가 밤새 신문했음에도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단지 ‘불량하다’는 이유로 구금했다는 것. 학생 입장에선 당구장에 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인데, 당시 분위기를 보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럴 만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당구장이 ‘비행청소년 아지트’ 혹은 ‘깡패 소굴’쯤으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로 깡패나 조폭들 줄 없으면 당구장 영업을 못한다고 그랬거든요. 당구장 사장 중에 어디 나가서 ‘나 당구장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부끄럽게 생각했으니까….”


1987년 우리나라 최초의 당구 전문지 ‘월간 당구’(현 빌리어즈)를 창간한 김기제(85) 대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그랬다. 그는 한때 범죄와 탈선의 상징이었던 한국 당구의 스포츠화를 주도해 온 당구계 원로다. 2014년 ‘초·중·고교 정화구역 내 당구장 설치금지 규제 철폐 대책위’를 만들어 지난해 기어코 규제 철폐를 이끌어냈다. 세계일보는 김 대표가 한국 당구 135년사를 집대성하는 작업 막바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24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김기제 대표가 1884년부터 한국 당구가 걸어온 발자취를 설명하고 있다.

◆당구계의 ‘메카’ 된 대한민국

“…그랬던 당구가 지금처럼 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에는 정말 무수한 노력이 있었어요. 지금은 우리가 전 세계 당구인의 ‘메카’라 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최근 ‘당구붐’이 심상치 않다. 굵직굵직한 세계대회 유치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지더니 급기야 지난해 5월 프로당구협회(PBA)가 출범했고, 수억원의 상금이 걸린 프로대회가 줄이어 개최되고 있다. 어느 종목이든 ‘프로’는 대중적 인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법. 인기는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한 3쿠션 세계대회 결승전 시청률은 1.201%로, 전날 손흥민이 출전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시청률(1.081%)보다 높았다. 시청률만 따지면 프로야구엔 못 미쳐도 프로농구, 프로축구는 크게 앞지른다.

김 대표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30년 새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거다. 지금이야 청소년도 자유롭게 당구를 즐기지만 1993년 4월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18세 미만 청소년은 원칙적으로 당구장에 출입할 수 없었다. 법에 따라 전국 모든 당구장에 ‘18세 미만 출입 금지’ 푯말이 내걸렸다.

“오랫동안 당구는 파친코 같은 ‘유기장업’으로 분류됐어요. 스포츠는커녕 아무튼 아이들에게 유해하니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당구는 부정적으로 그려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구의 스포츠화’는 모든 당구인의 숙원이었다. 자동차와 주유소 관련 잡지를 발행하던 김 대표가 당구 잡지에 눈을 돌린 것도 여러 당구인의 거듭된 요청이 있어서였다. 이후 그는 스포츠로서의 당구의 매력을 집중 조명했다. 1993년 헌법소원 당시 헌재에 제출된 소명자료 중 90% 이상이 그가 만든 잡지에 실린 기사와 칼럼이었을 정도다.

◆“당구계 노력들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만 수십년에 걸친 ‘주홍글씨’를 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7년 헌재는 유치원과 대학 주변 당구장 운영 제한은 위헌이라면서도 초·중·고교는 합헌으로 보았다. 역대 교육부장관들도 “청소년 생활지도 측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거들었다. ‘초·중·고교 근처 당구장 금지’ 규정은 당구계의 노력 끝에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난해서야 비로소 풀렸다.

김 대표가 2009년부터 당구사를 정리하고 있는 건 이런 노력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캐롬당구연맹(UMB) 3쿠션 세계랭킹 6위의 김행직(28)이나 10위 조명우(22), 31위 김준태(25) 등 기라성같은 20대 선수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란 얘기다. “만약 30년 전 아무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고 당구장이 여전히 미성년자 출입금지였다면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당구계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거죠.”

여기에는 당구가 정통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담겨 있다. 당장 당구의 기원만 봐도 1909년설, 1915년설이 마구잡이로 쓰이는 실정이다. 그는 “지난 10년간 사료들을 분석해 보니 ‘최초의 선교사인 알렌이 갑신정변 전 제물포의 한 호텔 당구대 위에서 새우잠을 잤다’ 등 1884년 이미 당구대가 있었던 정황이 있다”며 “단순 사건 나열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한국 근대사와 당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0년,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한국 당구사를 쭉 정리하고 있는 그가 보기에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달려 있어서다. 사실 전문가들은 한때 시들했던 당구가 다시 인기를 끄는 밑바탕엔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한다. 어릴 때 추억이 담겨 있는 데다 장비 등 별다른 지출이 필요하지 않고 건강에 무리가 적어 중장년층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청년층 유입은 남겨진 과제가 된다. 김 대표는 때마침 첫발을 뗀 프로당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 프로당구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선수들의 지위가 높아지면 유소년들의 관심이 보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로당구 출범에서 비롯된 당구계 ‘집안싸움’은 골칫거리다. PBA 출범에 맞춰 대회 참가를 금지한 대한당구연맹은 지난해 6월 이를 어긴 선수 369명의 등록을 한꺼번에 말소처리했다. 최정상급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기대하는 당구인들로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동안 당구계가 그래 왔듯 이번에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옵니다. 당구를 법으로 금지하고 냉소하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당구대국’이 됐어요. 당구의 진정한 스포츠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는 한 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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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행복의문 2020.02.16 09:01  
당구는 이제 엄연한 스포츠 입니다. 탈선창구가 절대 아니죠...
놀이문화 입니다. ^^

축하합니다. 18 럭키포인트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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