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도 몰랐다" 임효준 귀화, 中 노회한 전략인가
임효준이 중국 귀화를 결정한 것은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다. 임효준은 예전 강제추행 혐의로 1, 2심 판결을 받은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결과에 따라 선수 자격 정지 징계로 내년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6월 임효준은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 중 대표팀 후배 A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신체 일부를 드러나게 한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임효준은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임효준은 2019년 선수 자격 정지 징계의 효력이 살아난다. 당시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고, 대한체육회 재심에서도 유지됐다. 브리온 컴퍼니는 "재판과 빙상연맹의 징계 기간이 길어지면서 임효준은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꿈을 이어나가기 어렵게 됐다"며 귀화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임효준이 중국 국적을 얻어도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헌장 제41조 2항에는 '올림픽 대회나 대륙별 혹은 지역별 대회나 세계 혹은 지역 선수권대회에서 한 국가를 대표하다가 이후 국적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국적을 취득한 선수는 이전 국가의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대회에 참가한 후 적어도 3년이 경과한 후부터 새로운 국가의 대표로 올림픽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임효준이 한국 국가대표로 마지막으로 치른 국제 대회는 2019년 3월 10일 세계선수권대회다. IOC 규정에 따르면 임효준은 2022년 3월 10일 이후에 다른 국가 대표로 나설 수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은 2022년 2월 20일에 끝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임효준의 출전은 불가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친선대사로 위촉된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이 2018년 3월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쇼트트랙 유망주 이비호 어린이에게 인재양성지원 후원금을 전달하는 모습. 자료사진=황진환 기자대한체육회는 이에 대해 "임효준의 출전과 관련한 동의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한빙상경기연맹도 "이와 관련된 규정을 알고 있다"면서 "체육회와 향후 면밀히 협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임효준의 중국 귀화는 그동안 빙상계에 소문은 돌았지만 실체는 없었다. 연맹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임효준이 연맹에 국가대표 선발전과 각종 대회 출전 여부를 문의했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귀화 소식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국내외 빙상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중국은 현재 평창올림픽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끈 김선태 감독이 총감독을, 안현수가 코치를 맡고 있는데 이들도 임효준의 귀화 추진 사실을 몰랐다"고 귀띔했다. 이어 "중국 당국에서 주도면밀하게 물밑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이 어떤 조건으로 선수 영입을 추진했는지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야심차게 내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던 2008년 하계올림픽의 재현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이끈 김 감독과 2006년 토리노, 2014 소치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최고 스타 안현수를 영입한 것이다.
임효준은 한국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 평창올림픽 당시 1500m 금메달과 500m 동메달을 따낸 임효준은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무려 4관왕에 오르며 세계 최강을 입증했다. 중국으로서는 2014년 당시 안현수를 영입한 러시아의 성공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안현수는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올림픽에 나서 3관왕에 올랐다.
김지용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장과 ,김선태 감독, 곽윤기, 김도겸, 서이라, 임효준, 황대헌(왼쪽부터)이 23일 오전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자료사진=이한형 기자임효준으로서는 자칫 붕 뜨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중국 귀화를 택했는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게 되는 셈이다. 빙상계 관계자는 "중국의 노림수에 임효준이 놀아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연맹은 신중하게 상황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연맹 관계자는 "우리 팀은 에이스를 잃고 반대로 중국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얻게 되는 상황"이라면서 "연맹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임효준으로서는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유지돼 선수 자격을 회복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이런 불안 심리를 노리고 중국 측이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도유망한 선수 1명의 장래는 물론 한국 쇼트트랙의 베이징올림픽까지 걸린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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