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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리베로의 빈 자리... '살림꾼' 고예림이 메웠다

주전 리베로가 없었지만 선두 현대건설은 여전히 강했다.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1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2, 25-17, 25-20)으로 승리했다. 승점3점을 챙기며 5연승을 질주한 현대건설은 시즌 승점 48점으로 2위 GS칼텍스 KIXX(43점)와의 차이를 5점으로 벌리며 정규리그 우승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18승4패).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 헤일리 스펠만이 서브득점 4개를 포함해 57.14%의 공격성공률로 20득점을 올렸고 양효진이 11득점, 황민경이 10득점으로 뒤를 이었다.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현대건설은 이날 윙스파이커 고유민이 주전 리베로로 나섰음에도 김연견의 공백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김연견의 공백을 메운 '밀가루 공주' 고예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에서 치열한 경쟁하던 고예림, 기업은행 이적 후 급성장
 

▲  도로공사에서 출발해 기업은행에서 성장한 고예림은 현대건설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지금이야 현대건설의 붙박이 주전이자 V리그를 대표하는 공수겸장 윙스파이커로 꼽히지만 사실 프로 초기만 해도 고예림은 썩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다. 강릉여고를 졸업한 고예림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해 신인왕에 올랐다. 하지만 그 해 입단한 선수 중에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단 4명(고예림, 이고은, 고유민, 한다혜)에 불과할 정도로 2013년 신인 드래프트는 '흉년'으로 꼽힌다.

고예림은 도로공사 시절 같은 포지션에 황민경, 표승주(IBK기업은행 알토스), 문정원(도로공사), 김선영 등 비슷한 기량의 경쟁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고예림의 출전시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로 입단 초기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해 왔기에 고예림의 기량이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도로공사는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FA센터 배유나를 영입했고 보상선수로 황민경을 GS칼텍스에 내줬다. 고예림에게 황민경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선배이자 절친한 언니였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포지션 경쟁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고예림은 황민경이 팀을 떠난 2016-2017 시즌 주전으로 도약해 29경기에서 34.98%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데뷔 후 가장 많은 276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고예림은 주전으로 도약한 지 1년 만에 황민경과 같은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우승도전을 선언한 도로공사가 FA시장에서 '클러치박' 박정아를 영입하면서 고예림이 보상선수로 기업은행에 지명된 것이다. 정든 팀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는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정철 감독 밑에서 보낸 두 시즌 동안 고예림은 선수로서 많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기업은행을 이끌었던 이정철 감독은 고예림에게 박정아가 빠진 주전 윙스파이커 자리를 맡겼다. 고예림의 왼쪽 파트너가 외국인 선수 메디슨 리쉘과 어도라 어나이였기 때문에 고예림은 언제나 이정철 감독으로부터 서브리시브와 수비에 대한 지적을 들어야 했다. 그 결과 고예림은 2017-2018 시즌 42.33%, 2018-2019 시즌 48.75%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수비에서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공수 겸비한 윙스파이커 고예림, 현대건설 우승의 마지막 조각 될까
 

▲  이번 시즌 리그에서 고예림보다 많은 서브리시브를 책임지는 선수는 도로공사의 문정원 뿐이다.
ⓒ 한국배구연맹


 
고예림은 2018-2019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었다. 마침 고예림보다 먼저 현대건설에 입단했던 황민경이 구단에 고예림 영입을 적극 추천했고 고예림이 FA로 현대건설에 입단하면서 도로공사 시절의 단짝은 돌고 돌아 현대건설에서 재회했다. 황민경과 고예림은 첫 공식대회였던 캡대회에서 현대건설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5경기에서 87득점을 기록한 고예림은 MVP에 선정됐다.

고예림은 V리그 개막 후에도 현대건설을 리그 1위로 이끌며 '모범FA'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번 시즌 공인구의 변화로 인해 리시브 효율이 35.51%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리그에서 문정원(938회) 다음으로 많은 659회의 리시브를 책임지면서 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반면에 황민경의 공격력이 살아나고 2년 차 센터 정지윤의 기량이 부쩍 성장하면서 공격에서는 부담을 많이 덜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현대건설은 지난 4일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전에서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부상을 당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백업 리베로로 등록돼 있는 이영주는 김연견에 가려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고 윙스파이커 고유민 역시 이번 시즌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아 경기 감각이 최상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도희 감독이 어떤 선수를 리베로로 내세워도 고예림과 황민경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분명했다.

현대건설은 11일 도로공사전에서 고유민과 이영주를 번갈아 투입했지만 고유민의 리시브 효율은 5.88%에 불과했고 믿었던 황민경마저 18.75%의 리시브 효율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에는 고예림이 있었다. 고예림은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2번의 리시브를 시도해 45.45%의 효율을 기록했고 15개의 디그와 함께 61.54%의 공격성공률로 9득점을 보태며 현대건설의 3-0 완승에 크게 기여했다.

고예림은 도로공사 시절부터 하얀 피부와 예쁜 외모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남성팬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V리그 여자부의 대표적인 스타선수다. 하지만 정작 고예림의 플레이는 화려한 공격보다는 서브리시브와 수비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 스타일에 가깝다. 그리고 고예림이 가진 능력은 우승을 노리기엔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현대건설이 찾던 마지막 퍼즐조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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