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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품지 못한 태극마크, 은퇴 선언에도 털어내지 못한 전태풍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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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품지 못한 태극마크, 은퇴 선언에도 털어내지 못한 전태풍의 아쉬움

기사입력 2020.04.14. 오후 12:50 최종수정 2020.04.14. 오후 01:21 기사원문


[점프볼=민준구 기자] “국가대표는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지난 3월 24일, 한국농구를 빛낸 멋진 남자가 유니폼을 벗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11년간 활약한 전태풍이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그에게 있어 후회란 없었다. 단 하나, 처음이자 마지막 목표였던 태극마크를 제외하면 말이다.

미국 청소년 대표, NCAA 디비전Ⅰ, 유럽농구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 전태풍은 2006년 처음으로 KBL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사실 세계 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었던 그가 변방에 위치한 한국농구에 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유는 단순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것. 전태풍은 태극마크 하나만을 생각한 채 2009년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왔다.

전태풍은 “유럽에서 외국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농구에 대한 부족함이 느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다녀오고 난 뒤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국가대표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크게 와닿았다. 미국 청소년 국가대표를 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다른 나라가서 농구하고 오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다. 근데 한국, 어머니의 나라에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면 충분히 돌아갈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오게 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전태풍은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지 못했다. 귀화 혼혈선수로서 함께 이름을 날린 이승준, 문태종, 문태영이 다양한 국제대회에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쉬운 일이다.

※ 귀화 혼혈선수 국가대표 출전 이력

이승준_2010 광저우아시안게임/2012 런던올림픽 최종예선/2013 마닐라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문태종_2011 우한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2014 스페인농구월드컵/2014 인천아시안게임
문태영_2015 창사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물론 전태풍의 이름은 24인, 16인 등 예비 명단에 항상 올라와 있었다. 문제는 12인 최종 엔트리에서 매번 탈락의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는 점. 양동근이라는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오랜 시간 버티고 있었다는 것과 한국농구와 대조되는 플레이 성향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이승준과 문태종 등 확실한 장점을 가진 경쟁자가 있었다는 것이 겉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전태풍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2010년에 처음 국가대표가 될 기회가 주어졌다. 근데 유재학 감독님은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에 100% 맞출 수 있는 선수들을 원했다.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내게는 적응하기 힘든 일이었다”라며 “2주 정도 소집 기간이 있었는데 하루에 세 번씩 훈련했다. 너무 힘들어서 쉬면 안 되냐고 묻기도 했는데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준이 형은 착해서 유재학 감독님 말을 다 들었고 마지막에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웃음). 열심히 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전태풍은 종종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기량 저하가 급격했던 2014년 이후에도 기회는 있었지만 말이다. 한국행을 마음먹게 된 국가대표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전태풍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고 스스로 문제 삼을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감은 지금도 있다. 다른 선수들도 잘하지만 내가 국가대표로 뛰었을 때 분명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솔직히 승준이 형과 (문)태영이 형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토니 애킨스’는 인정받는 선수였다. 근데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건 당시에는 너무 슬펐고 화도 났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이게 인생이다.” 전태풍의 말이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전태풍에게 있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 이승준은 은퇴 이후에도 3x3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여전히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전태풍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태풍은 단호했다. 그는 “이제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목표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다치지 않는 수준에서 하는 운동이 즐겁다. 물론 가끔 3x3 농구를 할 생각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진지하게 할 생각은 없다. 다치지 않는 선에서 내 열정만 보일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한때 아시아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불린 요르단의 귀화 선수 라심 라이트가 전태풍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는 것. 과거 전태풍은 라이트의 플레이를 보고 “저 선수가 아시아 No.1이라는 건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라이트가 아직도 요르단의 3x3 선수로 뛰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전태풍은 또 한 번 승부사의 피가 끓었다.

“라이트? 기억난다(웃음). 만약에 국가대표로서 만났다면 ‘개꿀’이었을 것이다. 내가 무조건 이겼을 테니까. 지금 3x3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국가대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웃음). 라이트가 뛰고 있다면 내가 뛰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하.”

# 사진_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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