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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꿀잼’ 승부는 ‘한 방’… 모래판이 달아올랐다

보헤미안 1 457 0 0

경량급 ‘태백·금강’ 예능서 인기몰이 / 배지기·되치기… 기술 다양해 박진감 / 젊은 팬 몰리며 경기장 분위기 ‘업’ / 평일 경기시간 낮→저녁 변경 검토 /“모래 털고 일으켜주는 ‘젠틀 스포츠’ / 넘어갈 때 ‘쿵’ 소리 스트레스 싹∼”
 

서로의 샅바를 잡고 일어선 두 사람은 처음 몇 초 동안 선 자리에서 다리만 살짝 움직이며 탐색전을 펼쳤다. 한 선수가 먼저 다른 선수에게 다리 기술을 걸었지만 상대방은 넘어가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20초 가까이 둘은 가쁜 숨을 들이쉬며 공격 기회만 엿봤다. 승부는 의외로 쉽게 갈렸다. 먼저 기술에 걸렸던 선수가 다리를 푼 뒤 상대방을 배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옆으로 돌려 모래판에 ‘쿵’ 눕혔다. 시원한 ‘배지기’(배로 끌어당겨 눕히기) 기술이었다.

이로써 이승호(34)는 설날 장사대회에서 3년 만에 금강장사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 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그때 한 판만 더 이기면 우승이란 생각에 더 힘이 났다”고 말했다. 설날 장사 결승전에서 만난 임태혁(31)도 이승호와 같은 수원시청 소속이다. 이승호는 “저희가 씨름 스타일도 비슷하고 서로 잘 안다. 임태혁이 다른 선수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워 경기에 더 집중했다”며 “조금만 움직여도 수가 다 읽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가자고 했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씨름선수 이승호(오른쪽)가 지난달 24일 충남 홍성군 홍주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설날장사씨름대회 금강급에서 우승한 뒤 준우승한 임태혁과 나란히 미소를 짓고 있다. 수원시청 제공

순식간에 상대방을 들고 돌리는 배지기,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 100㎏ 초반대 선수가 140㎏대 거구의 선수도 누를 수 있는 ‘뒤집기’, 어깨로 돌려 버리는 ‘되치기’ 등은 씨름이 낯선 관중이 봐도 매력적이다. 단 몇 초 만에 승부가 나는 씨름의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이승호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신체 특성상 다리 기술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그 결과는 ‘밭다리’ 기술이 그의 주특기가 됐다. 상대방을 자신의 왼쪽으로 당기며 오른쪽으로 쓰러뜨리는 ‘왼배지기’와 비슷한 움직임으로 공격 주도권을 빼앗는다. 임태혁의 간판기술은 ‘들배지기’다. 들배지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들어올리는 기술인데, 임태혁의 들배지기는 상대를 번쩍 드는 대신 그냥 비스듬히 들어올려 바닥에 눕힌다. 완전히 들어올리면 상대한테 되치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름 체급은 네 단계다.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백두부터 한라, 금강, 태백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씨름은 백두·한라급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엔 선수들 몸이 가벼워 경기가 더 빠르고 화려한 기술을 활용하는 태백·금강급의 인기가 상한가다. 지난해 12월 태백·금강 선수들이 출연하는 KBS 예능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에 출연 중인 두 선수는 요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임태혁은 저체급 씨름의 인기에 대해 “한라·백두는 아무래도 자세 잡고 경기 시작할 때까지 오래 걸리는 데 비해 태백·금강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빠르고 박진감이 넘쳐 지루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늘어난 젊은 팬들이 선물도 주며 응원하는 등 경기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경기를 치를 때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나는 팬을 묻자 “아이가 심하게 아픈 분이 ‘씨름의 희열’ 방송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해서 더 사명감도 생기고 힘을 드리고 싶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승호는 자신의 인기 비결로 “차가워 보이는 외모에 반전인 부드러운 성격”을, 임태혁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귀여운 몸매”를 각각 꼽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외모보다는 역시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목표다. 둘은 한목소리로 “후배가 기억하는 선수, 씨름을 잘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호는 “전에는 ‘5초 승부사’로 불렸는데 요즘은 ‘10초 승부사’로 불려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싶어 씁쓸하다”며 웃어 보였다. 씨름의 인기를 키우기 위해 둘은 최대한 경기에 많이 나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관중이 많이 찾는 시간대로 경기 시간을 바꾸는 건 희망사항이다. 현재 대한씨름협회는 프로리그를 만들면 경기 시간을 평일 낮에서 저녁 때로 과감히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최종 우승자 한 명을 뽑는 ‘씨름의 희열’ 방송에서도 “제가 일찍 떨어지면 팬이 경기를 못 보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임태혁은 “선수끼리 잘한다고 종목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대중이 관심을 가져줘야 하니 저녁 경기에 찬성한다”고 반겼다. 이승호도 “저녁으로 경기 시간을 옮기는 건 저도 바라는 바”라며 “일대일로 붙지만 (이종격투기 등과 달리) 피가 나지 않아 아이부터 노인까지 편하게 볼 수 있고, 1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빨리 승부가 나는 씨름이 매 경기마다 재미가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씨름선수 박정석이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상배 선임기자

한라·백두급 선수들도 분발하는 분위기다. 양평군청 소속 박정석(33)은 “최근 주목받는 선수들이 솔직히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더 오랜 시간 관심을 받아온 체급인데 요즘 들어 태백·금강급에 밀린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8년 천하장사까지 오른 박정석이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겠다는 각오다. “20대 때는 운에 기대서 경기하며 일희일비했으나 30대 들어선 후회 없이 운동하자는 마음에 저보다 어린 윤필재(26·의성군청) 등에게도 가감 없이 조언을 구했다”는 박정석은 “2018년 천하장사 시합 당시 예선전을 치를 때 몸상태가 안 좋았지만 본선에 진출하니 자신감이 더 붙었고 노력한 보상을 얻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박정석은 “후배들 사이에 ‘예의 바르고 열심히 훈련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마지막까지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태백·금강급이 화려하고 스피드가 좋다면 한라·백두급은 묵직함이 있다”며 “선수나 동작이 다 크니까 더 시원한 맛이 있다”고 자랑했다. 박정석은 “한라·백두급 선수가 더 둔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경기를 보면 덩치 큰 선수도 놀랄 만큼 빨리 움직인다”며 “한라·백두급은 다리 기술 대신 허리 기술을 많이 쓰고 무엇보다 ‘한 방’에 끝나는 경기가 많은 점이 묘미”라고 설명했다.

태권도, 복싱 등 다른 투기종목과 달리 씨름은 두 선수가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시합을 시작한다. 박정석은 “그만큼 씨름은 예의와 스포츠맨십을 중시한다”며 “승패를 떠나 이긴 선수가 진 상대방 몸에서 모래를 털어주고 일으켜주는 등 씨름만의 깔끔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씨름을 직접 보면 선수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며 “덩치 큰 선수들이 ‘쿵’ 하고 넘어갈 때 관객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니 많이들 경기장에 와주시면 좋겠다”고 대중의 관심을 기대했다.

◆대한씨름협회 박팔용 회장 “힘 씨름서 진화… 보는 ‘재미’ 키울 것”

“씨름은 경기 시작 전에 서로 절하고, 누가 자빠지면(넘어지면) 이긴 선수가 모래를 다 털어주는 예의 있는 종목입니다. 팔씨름, 다리씨름, 말로 싸우는 건 입씨름이라고 하듯이 씨름이란 용어는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만큼 몸과 몸을 맞대는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운동입니다.”

대한씨름협회 박팔용(73·사진) 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씨름을 향한 열정이 묻어났다. 지난달 17일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씨름은 몸과 몸을 맞대고 땀을 흘리는 운동이라 그런지 선수들이 인간미 있고 매너가 좋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는 제2의 ‘씨름 전성기’를 연 한 해였다. 씨름이 남북 공동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5월5일이 ‘씨름의 날’로 지정됐다. 지난해 9월 열린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을 기점으로 스페인, 몽골, 터키, 뉴질랜드, 우즈베키스탄 등 13개국이 모인 세계씨름연맹도 창립됐다. 몇 년간 공들인 여자씨름과 프로씨름은 올해부터 시범경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씨름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씨름 자체의 재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의 씨름은 ‘힘씨름’에서 ‘기술씨름’으로 전환 중”이라고 했다. 과거 체급을 키워 힘으로 대결하던 씨름에서 몸집을 줄이는 대신 기술 사용과 속도를 높인 기술씨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140㎏, 150㎏ 되는 선수끼리 샅바만 잡고 앉아 있다가 밀고 넘어지면 관중은 재미없어한다”며 “좋은 기술로 승부를 가려 씨름 규칙을 모르는 누구라도 볼거리가 될 수 있는 씨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씨름의 장점으로는 일반 관중도 승패를 쉽게 판정할 수 있는 단순함과 체중이 더 나가는 선수도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는 박진감 등이 꼽힌다. 박 회장은 “더 이상 체중으로만 승패를 결정짓는 지루한 경기를 피하려 백두급 체중 제한도 120㎏으로 줄이려 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스모를 국기로 만든 일본처럼, 올해는 우리도 씨름이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국기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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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행복의문 2020.02.09 22:22  
씨름의 인기... 아직 멀었습니다.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카지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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