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기대 고개 숙인 이정후, 넋 놓고 껌 먹은 강백호

지난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야구 동메달결정전. 선발 김민우의 난조로 1회부터 대거 4점을 내준 한국은 2-5로 끌려가던 5회 똑같이 4득점으로 응수하며 승부를 6-5로 뒤집었다. 그러나 1점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믿었던 마무리 오승환이 8회 1사 만루서 폭투에 이어 2타점 2루타, 2점홈런을 차례로 맞고 6-10 역전을 허용했다.

#장면1

김경문 감독은 오승환을 내리고 신인 김진욱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 사이 중계화면에 주요 야수진의 모습이 차례로 잡혔다. 이번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주장 김현수는 허탈한 표정과 함께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국제용 리드오프 박해민도 머릿속이 복잡해보였다. 승부욕이 강한 이정후는 현실을 납득하기 힘들었는지 펜스에 두 팔을 짚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역전에 분해 하는 모습이었다.

#장면2

여전히 6-10으로 뒤진 8회초 2사 1루. 이번에는 중계화면에 앞선 상황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장면이 포착됐다. KBO리그 타율 1위 강백호가 더그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먹으며 멍하니 경기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박찬호 KBS 해설위원은 “강백호의 모습이 잠깐 보였는데요 안 됩니다. 비록 질지언정 우리가 보여줘서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파이팅을 해야 합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물론 8회 5실점은 5점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실제로 상대에게 완전히 승기를 내준 이닝이기도 했다. 그러나 홈팀으로 배정된 김경문호에겐 아직 아웃카운트 6개가 남아있었고, 야수들도 어떻게든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여기에 한국은 과거 국제대회서 약속의 8회, 기적의 9회 등 뒷심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디펜딩챔피언이 결승전에 가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이대로 경기를 마칠 순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향후 국가대표팀을 이끌어야 할 22세 강백호는 넋을 잃고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한 모습을 보였다. 더그아웃에서 껌을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의 표정과 껌을 먹는 태도에서 끈기, 파이팅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국 야구의 레전드인 박찬호가 해설 도중 “저런 모습은 안 된다”고 외쳤을까.

한국은 결국 도미니카공화국에 6-10으로 패하며 13년만에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도쿄올림픽을 노메달로 마무리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베이징 금메달의 영광에 취한 채 류현진, 김광현의 뒤를 잇는 에이스를 육성하지 못했고, 지도자들도 과거의 틀에 박혀 기민한 경기 운영에 실패했다. KBO리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연봉만 높고 내실은 없는 프로 리그라는 게 확인됐다.

그리고 또 하나. 과거 메이저리그서 한국을 빛내고, 국제대회서 한국 야구를 위해 헌신한 레전드의 일침을 곱을 필요가 있다. 과연 선수들은 태극마크의 무게를 얼마나 무겁게 느끼고 있는지, 또 매 경기 얼마나 국가대표다운 승부욕을 발휘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때다. 국가대표는 기술보다 멘탈이 많은 걸 좌우하기 때문이다.

강백호는 늘 1년 선배인 이정후를 자신의 롤모델이라 말한다. 그러나 동메달결정전에서 6-10이 되자 나온 반응은 사뭇 달랐다. 물론 강백호 역시 승부욕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아마 역전이 너무 허탈해서 넋을 잃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강백호가 향후 한국야구를 이끌 에이스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도쿄올림픽을 디딤돌 삼아 멘탈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진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backligh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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