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끝!' 단장 정민철의 첫 3개월, 실리와 명분 다 잡았다
정민철(48) 한화 단장은 "3개월 동안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한화는 지난해 10월 구단 영구결번(23번)을 보유한 정민철 MBC 스포츠+ 해설위원을 새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야구계는 한용덕 감독보다 후배인 정 단장을 프런트 수장으로 앉힌 깜짝 인선에 다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단장감으로 준비돼 있는 인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3개월 여가 흘렀다. 기대와 걱정을 절반씩 안고 출발한 정 단장은 기대 이상의 행보로 스토브리그에 신선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부임과 동시에 바쁘게 움직였고, 합리적이면서도 신속한 판단으로 산적한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했다.
정 단장은 "내가 한화에 오래 몸담았고 많은 선수들과 친분이 있기에 '온정주의'에 발목을 잡힐 것 같다는 우려를 많이 들었다"며 "진짜 날 잘 아는 선수들은 그런 평가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선수와 코치 시절 정 단장은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달리 신상필벌 원칙이 확실한 스타일이었다는 후문이다. 정 단장은 "지금은 더욱 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직책을 맡았기에 개인적인 마음과는 별개로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선수단 전체가 올 시즌 팀 성적 하락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분위기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단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퓨처스(2군) 감독 자리에 최원호 야구대표팀 투수코치를 불러 들였다. 현장 경험과 이론을 두루 갖춘 최 감독과 "2군의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보겠다"는 뜻에서다. 또 SK가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던 2018년 1군 타격코치를 맡았던 정경배 코치도 퓨처스로 영입했다. 한화 2군에 힘은 좋지만 기술이 다소 부족한 거포 유망주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정 단장은 "예전부터 '인사가 만사'라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육성이 중요한 팀이라 2군에도 무게감 있는 코칭스태프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엔 내부 프리에이전트(FA)를 잡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 그 스타트가 마무리 투수 정우람과의 4년 39억원 계약. 총액 40억원을 넘기지 않고 사인한 대신, 성적에 따른 옵션을 모두 없애 구단의 실리와 선수의 자존심을 모두 챙겼다. 이어 한화에만 몸담은 투수 윤규진과는 1+1년 최대 5억원, 주포인 내야수 이성열과는 2년 최대 14억원에 각각 사인했다. 두 선수의 나이와 최근 활약도를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계약 조건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정 단장의 협상 능력 뒤에 붙어 있던 물음표를 떼어내게 된 계기였다.
마지막까지 공을 들였던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과도 1년 10억원이라는 '백의종군' 계약에 성공했다. 구단과 선수 양측이 큰 진통을 겪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원하는 조건의 격차를 좁히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한화는 이 과정에서 김태균과 밤늦게까지 오랜 시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정 단장의 설득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내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정 단장은 이같은 평가에 손사래를 쳤다. "우리 구단이 계약을 잘 유도한 게 아니라 반대로 한화를 향한 내부 FA 선수들의 '주인 정신'을 오히려 더 높이 사야 한다"며 "FA 대상자들 모두 큰 갈등이나 줄다리기 없이 사인을 했다. 서로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고 했다. 김태균의 1년 계약과 관련해서도 "워낙 꼭 잡아야 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라 처음에는 선수와의 만남에만 의미를 두고 구체적 조건을 제시한 게 조금 늦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그 후 양측이 논의한 기간을 생각하면 결코 늦게 계약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FA나 연봉 계약이 단장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공교롭게도 정 단장이 부임한 직후, 10개 구단 단장들의 모임인 KBO 실행위원회는 리그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 올 FA 등급제 도입과 기한 단축, 샐러리캡 도입과 최저 임금 인상, 외국인 선수 관련 제도 변경 등의 중요한 안건을 의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초보' 단장인 정 단장은 실행위원회에 참석하기 전 구단 직원들에게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KBO 규약이나 메이저리그 제도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정 단장은 "우리 구단의 이익을 떠나 KBO 리그 전체 인기를 회복하기 위한 결정들 아닌가. 선수 출신 단장님들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고, 나 역시 그저 의견을 듣기만 하다 돌아오는 것은 지양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많이 했다"며 "평소 여러 가지 '제도'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점을 후회했다. 내가 야구팬들을 위해 뭔가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왔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털어 놓았다.
선수, 코치 그리고 야구 해설가. 그동안은 주로 현장에서 호흡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해왔다. 이제 정 단장은 처음으로 '구단'의 입장에서 야구계를 바라보고, 그렇게 내린 판단에 따라 팀의 운영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에 앉았다. 정 단장은 "그동안 야구계가 너무 '데이터 야구'나 기술적·기계적인 문제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았는데, 내가 구단 입장이 돼보니 새삼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결국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모든 조직의 업무도 사람의 이성과 감성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현장뿐 아니라 마케팅, 홍보, 기획, 지원, 투자 문제까지 두루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입장에서 나 혼자 어쭙잖게 다 아는 척하면서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프런트 구성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이 잘 진행되지 못한다. 과정이 어렵더라도 결국은 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돌려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귀를 열어 두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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