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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최저연봉 계약' 송승준 "내 자존심보다 팬들 자존심 세우는 게 우선"

꼭두각시 0 670 0 0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스토브리그’ 등장인물 중에 장진우라는 노장 투수가 있다. 한때 시즌 19승을 따내며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세월에 밀려 ‘퇴물’ 소리를 듣는 캐릭터다.
 
억대 연봉자였던 장진우는 연봉 협상에서 5천만 원을 제안받고 고민에 빠진다. 돈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사업이라도 시작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으로 한 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갈망이 그를 자꾸만 마운드로 이끈다. 아직 방영된 내용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는 선수 생활 연장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멋지게 재기에 성공할 것이다. 그래야 드라마니까. 
 
드라마 속 장진우의 모습은 롯데 자이언츠 최고참 투수 송승준과 겹치는 면이 있다. 송승준도 한때는 롯데의 에이스였다. 정확하게는 롯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발투수 가운데 하나다. 롯데 프랜차이즈 통산 최다 선발등판 3위(279경기), 최다이닝 5위(1621이닝), 최다승 4위(107승), 최다 탈삼진 2위(1,213개)의 화려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최근 2년간은 내림세가 뚜렷했다. 2018시즌엔 부상으로 거의 1군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지난해도 세대교체 흐름 속에 1군보다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침 2016년부터 시작한 4년 40억 FA 계약도 지난 시즌으로 끝났다. 
 
1980년생인 송승준은 한국 나이로 올해 41살이다. 언제 은퇴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노장이다. 하지만, 2020시즌에도 송승준은 계속 현역으로 뛸 예정이다. 시즌이 끝난 뒤 먼저 구단에 찾아가 현역 연장 의사를 전했다. 돈도 보직도 상관없으니 1년 더 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연봉(4억 원)에서 무려 87.5% 적은 5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1년 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송승준에겐 이제 돈도 자존심도 더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사랑하는 롯데 팬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선발투수 보직도 이제는 젊은 후배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자신이 팀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시즌 중이라도 주저없이 그만둘 각오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는 송승준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송승준과 인터뷰는 1월 7일 오후 MBC 드림센터에서 진행됐다. 
 
“연봉 5천만 원에 계약…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부산에서 개인 훈련을 하며 시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후배들과 외국에 나가서 훈련했는데, 올해는 국내에서 운동할 생각입니다.

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거란 이야기도 많았는데, 현역 연장을 선택했습니다.
 
작년 시즌 거의 넉 달을 2군에서 머물렀어요. 8월 말 뒤늦게 올라와 던지긴 했는데, 이렇게 보여준 것도 없이 그냥 끝내기엔 아쉬웠습니다. 한편으론 그냥 시원하게 끝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냥 끝내면 시간이 지난 뒤에 후회될 것 같았어요. 뭔가 마지막이 개운치 않고 찝찝한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기회를 받았다면 어느 정도 성적은 낼 자신이 있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 게 너무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시즌이 끝나자마자 제가 먼저 구단에 찾아갔습니다.
 
어떤 얘기를 나눴습니까. 
 
구단이 저라는 선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사실 구단 입장에선 돈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나이 많은 선수고 고액 연봉자인데 부담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단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1년 더 하면서 마무리할 시간도 갖고, 후배들에게도 힘을 주고 싶었어요. 이런 제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구단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계약 조건이 궁금해지네요.
 
1군 최저연봉에 계약했습니다. 5천만 원을 받는 조건입니다.
 
지난해 연봉이 4억 원이었는데 5천만 원이면 전년 대비 87.5% 삭감된 금액입니다. 
 
물론 프로는 몸값으로 말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에 집중했습니다. 일 년 더 야구가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일 년 더 돈을 벌고 싶은 건지. 생각해보니 일 년이라도 더 롯데 팬들 앞에서 공을 던지고, 후배들과 함께하고 싶은 게 제 마음이더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니 결정이 한결 쉬워지더군요.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음. 솔직히 FA 계약 기간 4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으니까요. 2017년 한 시즌 잘하긴 했지만 그 외엔 돈값을 못 했다고 생각해요.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구요. 그래서 더더욱 연봉 욕심은 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개인 성적 욕심도 머리에서 지웠어요. 이제는 1승 더하고, 1홀드하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보단 롯데 팬들 앞에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선수가 구단에 먼저 찾아가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나요.
 
그동안 많은 선배들이 은퇴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아쉽게도 마지막에 구단과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로 자존심만 앞세운 게 원인이었다고 생각해요. 구단도 자존심을 세우려 하고, 선배들 역시 자존심을 중요시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가서 얘기해보자고 결심했죠. 
 
기득권을 포기하고 후배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구단에서도 높게 평가한 것 아닐까요.
 
그럴 지도요. 구단과 선수가 서로 잘 소통하고 조율하면 윈윈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막상 얘길 나눠보니, 의외로 이야기가 잘 통하더라구요. 다행히 구단과 공감대가 형성돼서 1년이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민규 단장님도 ‘후배들을 잘 이끌어 달라’고 주문하셨어요.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가족들은 항상 제 판단을 존중해 줍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건 믿고 지지해 주죠.
 
얘기를 듣다 보니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오는 노장 투수 장진우와 상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때 팀의 에이스였지만 성적 부진으로 연봉이 5천만 원으로 깎이고, 현역 연장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릭터잖아요.
 
제가 봐도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저 역시 그냥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추한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흔 살 넘은 투수도 얼마든지 잘 던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남이 은퇴하라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이제 그만하겠다’ 하고는 떠나는 모습을 그리는 거죠. 
 
만약에. 만약에 얘깁니다. 올 시즌 전성기 기량을 회복해서 15승을 거둔다,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단장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올해 좋은 성적을 내고, 경쟁력을 보여주면 일 년 더 해도 괜찮다’고요. 그래서 저도 말씀드렸죠. 그 부분은 제가 판단하겠다. 대신 만약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시즌 중이라도 먼저 찾아와서 그만두겠다고요. 조금이라도 제가 억지로 후배들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시즌 중이라도 끝내려고 합니다. 그게 저 자신과 팀을 위해서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선발 자리는 후배들 몫…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 되고 싶다”

후배들과 선발투수 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까.
 
아, 올해 제 보직은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발이 아닌 중간이요.
 
20년 넘게 선발투수만 해왔는데, 이제는 저도 중간에서 던질 때가 됐죠(웃음). 중간계투로 던지면서 불펜 투수의 마음이 어떤지도 느껴보고 싶고, 마무리 투수가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옆에서 보고 싶어요. 나중에 지도자를 하더라도 불펜투수 경험이 도움 될 것 같고요.
 
송승준 하면 리그 대표적인 선발 전문 투수인데, 불펜에서 던지는 모습은 낯설 것 같습니다.
 
선발이 익숙하긴 하지만, 지난해에도 8월 이후 불펜으로 등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선발은 우리 팀 젊은 투수들이 이끌어 나가아죠. 팀이 지금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시점에 제가 선발 기회를 받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린 선수들이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국 나이로 41세 노장입니다. 1군 마운드에서 던지려면 몸 상태가 관건인데, 자신 있습니까.
 
아직 인바디 체크를 해봐도, 신체검사를 해봐도 젊은 선수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 자부합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구단에서 보는 관점은 다를 수도 있겠죠.
 
2018시즌에는 허벅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2017년 좋은 성적을 내고 2018시즌을 맞이했는데, 중간에 허벅지를 다친 뒤부터 전력으로 공을 던지질 못하겠더라고요. 몸 자체는 괜찮아졌는데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거에요. 한동안 몸에 있는 힘을 제대로 다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속도 떨어졌었고요.
 
지금은 괜찮아졌나요.
 
물론입니다. 아직까진 부산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만드는 단계에요. 아직 손에 공을 잡은 단계는 아닙니다. 선발투수였다면 좀 더 일찍 피칭을 시작했을 텐데, 불펜 역할을 생각해서 일부러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어요. 몸 상태는 자신 있습니다.
 
송승준은 2019시즌 1군에서 11경기에 등판해 14.1이닝 7실점 평균자책 4.40을 기록했다. 샘플이 적긴 하지만, 9이닝당 탈삼진 8.16개(통산 6.74)를 잡아냈고 헛스윙율이나 컨택트 허용률 같은 세부 지표도 2017시즌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2015년과 같은 141.3km/h를 찍었다. 여전히 1군 타자들 상대로 경쟁력이 있단 증거다.
 
올겨울엔 외국에 나가는 대신 국내에서 훈련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우선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그 마음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날씨는 좀 춥지만, 사실 아마추어 시절엔 더 추운 곳에서도 운동했잖아요.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군요.
 
네, 그런 셈이죠. 또 사직야구장에 나가면 후배들도 있으니까, 같이 운동하면서 도와줄 게 있으면 돕고 해야죠. 팀에서도 제게 그런 역할을 바랄 겁니다. 
 
팀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후배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주연 역할을 할 때는 지났잖아요. 뒤에서 후배들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도 오프시즌에 제게 먼저 연락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상의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솔직히 기술적인 부분은 제가 이야기할 게 별로 없어요. 다 저보다 실력 좋은 친구들이니까요. 그보단 경험이라든지 멘탈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최근 2년간 부진한 성적 때문에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서운하지 않은가요.
 
프로 선수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프로라면 당연히 각오해야죠.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팬들이 돈 내고 사는 티켓값에 욕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누가 절 보고 욕해도, 웃으면서 달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지난해 롯데가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았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자존심과 자존감이 짓밟힌 한 해였습니다.
 
안 그래도 선수들과 자리에서 그런 얘길 했어요. 10등, 너무 창피한 성적이잖아요. 이래 가지고 부산에서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겠냐고요. 더 창피하지 않으려면 내년에 정말 잘해야 한다고요. 선수들 모두가 잘 알 거에요. 부산에서 요새 얼굴 들고 다닐 사람 없습니다(웃음). 다들 숨어다녀요. 부산에서 어디 돌아 다니지도 못합니다. 팬들이 얼마나 실망이 컸겠습니까. 선수들 자존심이 상한 만큼 팬들도 자존심이 크게 상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성적으로 보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욕하다가도 롯데가 잘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게 롯데 팬입니다. 노경은 선수는 ‘야구 잘하면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제 2020년이잖아요. 10등을 한 지난 시즌은 지나갔고, 지금은 새로운 시즌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그저 올해는 작년보다 나아지겠다, 그리고 팬들이 납득할 만한 경기를 하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네요. 승패는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이기든 지든 납득이 가는 경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마, 함 해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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