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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더 행복하다는 신재영 "미국보다 한국에서 농구가 더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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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은 미국생활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 신재영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저한테 농구는 애증이에요."

코트를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신재영(27, 171cm)을 기억하는 농구 팬들은 많다. 국내 여자농구에선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기 때문이다.

신재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국'이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10년 이상 미국에서 농구 유학생활을 했다. 남자농구에선 최근 이현중, 양재민 등 미국으로 떠나는 유망주들이 하나 둘 늘고 있지만 여자농구에서 해외파 선수는 아직도 생소하다.

또 신재영은 '김화순의 딸'이기도 하다. 김화순 씨는 1980년대 한국여자농구의 전설적 슈터로 꼽힌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로 한국여자농구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다.

프로농구 데뷔 후에도 신재영은 많은 농구 팬들의 관심을 샀다.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얼짱'스타로 기대를 모았다.

농구선수 은퇴 후에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제2의 삶을 사며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미국 농구유학부터 은퇴 후 지금까지. 일반적인 농구 선수의 길은 거부하고 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신재영을 만났다. 선수 때와 비교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자 신재영은 "10kg 뺐는데 최근 4kg이 다시 쪘다"며 웃었다.

▲ 미국 유학부터 지금의 삶까지. 신재영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다 ⓒ 신재영

신재영은 선일초 4학년 때 농구를 처음 시작했다. 어머니 김화순 씨는 "딸에게 운동은 안 시킨다"고 했지만 신재영의 농구 재능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특히 명슈터의 딸답게 슈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농구를 접한 신재영도 금세 재미를 붙였다.

이후 선일중 1학년 재학 중에 미국으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 1년 동안 스킬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결정한 미국행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생활은 10년 동안 이어졌다.

"엄마와 언니랑 같이 미국에 갔어요. 미국에서 지내다보니 계속 여기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도 수업 안 듣고 운동만 하는 한국보단 미국에서 공부도 하면서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으셨어요. 저도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지만, 점점 미국에 있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죠.“

적응은 쉽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친구들에게 '벙어리'라는 놀림도 받았다.

하지만 운동할 때는 달랐다. 농구할 때 신재영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운동만 잘하면 무시를 안 당해요.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해야 '와'하지만 미국은 무조건 운동이죠. 고등학교 농구 팀이 3군까지 있었어요. 별 거 아닌 것 같은 아시아 애가 1군에 있었고 1학년부터 주전이었어요. 4학년 땐 주장까지 맡았어요(미국 고등학교는 4년 과정). 이례적인 일이죠. 개교 이래 처음으로 고교 리그 우승까지 하면서 졸업 후 학교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에 꼽히기도 했어요.“

국내 농구 팬들에게 신재영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시기도 이 때쯤이었다. 신재영은 시애틀의 머서 아일랜드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주전 슈팅가드로 맥도널드 올아메리칸 후보에 오르는 등 활약이 좋았다.

아시아 여자농구 선수가 미국 고교에서 3점슛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장면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신재영은 단숨에 한국 여자농구의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디비전1 소속의 강팀 루이지애나 대학으로 진학한다. 하지만 루이지애나에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미국은 땅이 워낙 크잖아요. 루이지애나는 또 다른 나라더라고요. 나름 미국 문화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모든 게 쇼크였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디비전1에 간다고 기사가 났는데 정작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으니까요. 또 처음으로 엄마랑 떨어져 지내면서 저 혼자 다해야한다는 것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루이지애나에 있을 때였어요. 거의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철이 들고 생각이 많아지니까 엄마, 아빠가 고생하는 게 눈에 밟히더라고요.“

▲ 미국에서부터 신재영은 슛에 강점을 보였다 ⓒ 신재영

힘들었지만 어머니 김화순 씨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중, 고교시절 김화순 씨는 항상 신재영의 옆에 있었다. 학교 수업과 농구 훈련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신재영에게 1대1로 농구를 지도했다. 신재영은 "엄마한텐 평생 갚고 살아가야 될 정도로 정말 미안하다. 엄마와 아빠 모두 나보다 백배 천배는 넘게 고생했다"고 밝혔다.

"미국 시절은 즐거운 게 없었어요. 온통 부담이었죠. 아빠는 한국에서 돈 보내주고 엄마는 미국에서 혼자 저와 언니를 키웠어요. 특히 엄마는 저 때문에 체육교사라는 꿈을 포기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코치도할 수 있었을텐데 다 그만두고 왔어요. 엄마가 너무 고생했어요. 완벽주의 성향의 분인데 매일 새벽 5시에 저를 깨워서 슈팅 연습 시키고 학교에 보내고 장보고 제가 학교 끝나면 데려와서 또 운동을 보냈어요. 저녁에는 보충 운동하고. 그런 일을 계속 반복했어요."

결국 2학년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비전2 소속 험볼트 주립대로 편입을 결정한다. 신재영은 험볼트 주립대에서 고교 시절 때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오자마자 주전을 꿰찼고 4학년 때 주장을 맡으며 팀을 CCAA(California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어머니도 인정한 3점슛에서 강점을 보였다. 그 시절을 돌아본 신재영은 "맨날 슈팅 연습만 했다. 내가 스피드나 다른 부문에서 미국 선수들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라며 슛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밝혔다.

"대학 4학년 때가 미국 생활 중 제일 좋았어요. 엄마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미국에서 살았던 기간 중 유일하게 즐긴 것 같다고.“

신재영의 대학 4학년 평균 기록은 11.3득점, 4.6리바운드, 2.2어시스트. 슈팅가드로서 잠재력을 보인 그녀를 인천 신한은행은 2016 여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지명했다. 당시 1순위는 윤예빈(용인 삼성생명), 2순위는 진안(부산 BNK)이었다.

프로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2015-16시즌부터 2017-18시즌까지 1군 무대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경기당 출전 시간은 2분 11초.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너무나도 짧았다.

미국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한국농구는 세계 어느 리그보다 수비와 체력을 강조한다. 여자농구는 성인들인 선수에게도 강제 합숙생활을 시킨다.

"단체운동이라는 게 힘들어도 서로 으쌰으샤해주는 게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국내 프로농구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어요. 누구 하나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 선수 몫까지 배로 했어요. 하루 종일 눈치 보며 운동을 해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신재영을 향한 역차별도 존재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견뎌가며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면서 10년을 버텼어요. 내 나라인 한국에선 나만 잘하면 잘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더라고요. 전 인종차별을 한국에서 당한 거 같아요. 훈련 중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 영어로 해줘?'라는 말을 1, 2번 들은 게 아니에요. 엄마가 없었으면 아마 바로 유니폼을 벗고 운동을 접었을 거예요. 내 나라에 왔는데 환영받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미국에선 한국인이라고 거리 두고, 한국에선 제가 미국에서 왔다며 멀리하고. 슬픈 현실이었어요.“

신한은행에서 삼셩생명으로 팀을 바꿨지만 차별은 늘 존재했다. 결국 신재영은 2018년 은퇴를 결심했다.

▲ 신재영은 인천 신한은행, 용인 삼성생명에서 프로생활을 했다 ⓒ WKBL

선수시절 신재영을 지켜본 지도자들의 평가는 비슷하다. 수비와 체력에 약점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슈팅능력 하나는 인정했다.

3점슛 한 방이 필요할 때 팀의 주요한 식스맨으로 활용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무엇보다 어렸다.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굉장히 빠른 시기에 은퇴를 결정했다.

은퇴 후 신재영은 짧은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항공사에 취업하며 스튜어디스로 일을 시작한 것.

"은퇴 후 별다른 휴식 없이 다이어트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쉬고 싶었지만 나이에 대한 압박이 있었죠. 27살은 여자로서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요. 처음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알아봤어요. 하지만 문득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재영은 "미국에서의 경험이 내 자신감이다"라고 말한다. "미국생활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한국보단 나았어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걸 겪었습니다. 미국 생활 10년 중 6년은 적응하는데 시간을 쏟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성장했어요. 결과가 어떻든 과정에서 얻은 게 많아요. 특히 부모님께 감사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 농구선수 은퇴 후 스튜어디스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선 신재영 ⓒ 신재영

농구를 하는 동안 신재영은 미국과 한국에서 자신을 향한 '외부인'이라는 시선과 싸워왔다. 오히려 농구를 그만두고 마음이 편해진 이유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신재영은 "28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금은 차별이 없다. 내 모든 걸 보여줘도 이해해주는 사람들만 있다. 이제 아무도 날 이상하게 보거나 경계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이어 그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 거듭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제게 농구는 무엇이냐고요? 애증이에요. 농구를 그만두고 나니까 응원한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에요. 보여준 게 많지 않은데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미국에 있을 때도 SNS 메시지나 이메일로 팬이라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별 것도 아닌 선수인데, 좋아해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제 모습도 응원한다는 팬들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신기하고 감사해요. 한국농구를 탓하는 건 아니에요. 결국은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조금 빨리 은퇴하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많은 응원을 주신 팬들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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